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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omingsoo Apr 18. 2023

그리스친구 집에서 부활절 보내기1

그리스 일상

그리스 최대 명절 중 하나인 부활절에 그리스 친구 이사벨라의 초대를 받았다. 추석이나 설날에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한 거나 다름없다. 이곳에서는 명절에 친구를 초대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외국인 친구를 초대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특별한 일일 것이다.

 이사벨라의 집은 아그리니오(Αγρίνιο)라는 작은 마을인데 아테네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인터넷으로 버스표를 예매를 했는데 직통버스는 이미 매진이어서 일반 버스로 예매했다. 추석이나 설날에 버스표 사기 어려운 것처럼 여기서도 명절에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간다. 하지만 한국처럼 엄청난 교통체증이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워낙 인구가 적어서일지도. 일반적으로 막히는 구간에서 좀 막혔을 뿐 한국과 같은 명절 교통 체증이라는 것은 느낄 수 없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은 이상하게도 접근성이 매우 좋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하철로 바로 연결되지도 않고 한 번에 가는 버스도 거의 없어서 할 수 없이 택시를 탔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택시는 한적한 시내를 여유롭게 달렸다.

 이곳 티켓팅 시스템은 인터넷으로 예매를 한 후 예매한 티켓을 출력해서 가져가면 티켓 창구에서 진짜 버스표로 교환해 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예매 확인 메일에 "반드시" 예매한 티켓을 출력해서 가져오라는 경고문구가 쓰여 있다. 물론 미처 출력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프린트 서비스를 해주는 창구가 있기는 하다. 보통 국내선 비행기나 철도 같은 경우 예매하면 바로 애플페이 지갑으로 티켓 QR코드가 들어가서 모바일 티켓으로 입장을 할 수 있는데 고속버스는 아직 아날로그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아그리니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이사벨라와 이사벨라의 어머님께서 마중을 나왔다. 이사벨라의 집은 그리스에서 가장 큰 트리코니다 호수(Λίμνη Τριχωνίδα)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풍경을 가진 집이었다. 그곳에서 맛있는 해산물 요리로 점심식사를 대접받았다. 그리스는 부활절 전까지 고기와 유제품에 대한 금식을 한다. 그래서 주로 해산물로 식사를 하는 풍습이 있다. 이 날 먹은 새우구이와 오징어 오븐구이는 정말 부드럽고 맛있었다.

 저녁에는 부활절 전야 예배가 진행되는 것을 보기 위해 집 근처 교회를 방문했다. 그리스 정교회의 전통이 깊이 스며있는 나 라인만큼, 이 때는 동네마다 자리한 교회에 사람이 가득하다. 교회 안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매를 드린다. 부활절 전야 예배의 독특한 예전 중 하나는 예수님의 무덤을 형상화한 제단을 화려하게 장식한다는 점인데 부활절 전야 예배 때 이 제단은 교회 밖으로 나와 마을을 한 바퀴 돈다. 사람들은 그 뒤를 이으며 함께 따라간다. 어떤 이는 제단에 입을 맞추며 자신의 신앙을 표현한다.

제단 행렬은 아그리니오 시내 중심 광장에서도 이어졌다. 사제의 설교가 스피커를 통해 큰 소리로 광장 한가운데서 울려 퍼졌다. 저녁 10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광장 중심의 식당들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스의 저녁 식사 시간은 보통 10시 전후이다. 뜨거운 한낮의 태양이 지고 선선해질 때 저녁식사가 시작된다. 우리도 이때쯤 저녁 식사를 하러 광장에서 가까운 식당에 자리 잡았다. 광장 중심에서 울려 퍼지던 사제의 설교가 끝나고 커다란 십자가와 함께 예수님의 무덤 제단의 행차가 시작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후 광장에서는 구릿빛 불꽃을 화려하게 뿜어내는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이 불꽃놀이는 아그리니오에서만 볼 수 있는 부활절 전야 행사라고 한다. 그리스가 터키 점령 하에 있을 때 이슬람을 믿는 터키에 대항하여 '우리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저항의 의미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참 동안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장식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고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는 사람들로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리스에 와서 그리스 고유의 부활절 문화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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