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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뿔 Aug 27. 2022

통찰력과 독서

생각을 바꾸는 독서

우리는 지식 그 자체를 위해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을 개발하기 위해 축적한다. 

통찰력이 있으면 더 깊이 비평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읽는 것을 묻고 해석하고 평가한다. 

이런 식으로 독서는 생각을 바꿀 수 있다.

                                                          Havey 1988    '독서몰입의 비밀'에서 재인용



아마도 처음에는 책을 쓴다는 것은 인류의 기록으로서 지식을 축적하는 것일 겝니다. 

차츰 책을 쓴다는 것은 축적의 의미 보다는 전달의 목적이 강해지고 또 전달 보다는 쓰는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책을 쓴다는 표현보다는 글을 쓴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게 된 것같습니다.


오늘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식의 기록을 읽어 들임으로써 지식을 축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의 지식을 축적하고 나면 더 쌓아 올리기보다는 

이미 쌓은 지식의 활용이나 기존 사고의 틀을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발상입니다.

나 자신의 생각은 나를 둘러싼 숱한 관계 속에서 정립되고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고착된 것들입니다.

이를 단순히 몇 몇 문장과 단어만 읽고 바꿀 수 있는 겁니다.


여기에는 통찰력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통찰력은 

어떤 하나의 물건, 사실, 또는 정황을 보더라도 

그 발단과 전개 그리고 예측 가능한 결말을 떠올릴 수 있는 힘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해봅니다. 


나는 어쩌다 한번씩 드라마나 영화를 중간에서부터 보곤 하는데

중간에서 끼어든 관람객이나 시청자를 배려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없기에

엄청 불친절한 전개를 각오해야 합니다.

다소 맥락이 없는 터무니 없이 과장된 리액션도 앞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면

같이 웃을 수 있는 장면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고의 시간 5분에서 10분 남짓이 흐르고 나면 서서히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죠...


조금씩 따라 잡다보면 내가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어느정도까지 유추할 수 있게 되고

그럼으로 해서 점차 스토리에 빠져들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번 쯤은 전체 서사를 관통하는 촉이 발동합니다.

백퍼 적중하지는 않지만 (-.-;;) 세 번에 한번 정도는 중간에서 부터 보는데도

기승전결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의 경우는 워낙 막장 클리세가 세니깐

누구나 백퍼센트의 통찰력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미드나 특정영화는 쉽지 않지요~~..


이 촉은 숱한 스토리를 읽어내면서 생긴 맥락을 베이스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영감이 떠오를 때 머리 속에서는 발단에서 부터 전개 결말까지 

몇 가지의 시나리오가 동시에 랭크인 됩니다.

책을 읽다보면 맥락을 읽어내는 힘이 생기는데 작가의 의도나 떡밥을 받아먹을 줄 알게 된다는데 의미가 있지요.


바로 이 맥락을 읽어내는 힘에서 통찰력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람이나 사물이 왜 저기에 있는 지, 

또는 왜 저기에 있어야 할 사람이나 사물이 보이지 않는지를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문을 통해 현재의 사실로 부터 과거와 미래를 잇는 맥락이 잡히게 됩니다. 


책에는 저자가 구상한 맥락이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피디나 감독이 연출하면서 품은 맥락이 있을 것입니다.

  

타인이 구상하는 맥락을 알아차리는 것도 통찰력이겠지만

어쩌면 나 자신의 입장이나 관점을 알아차리는 것만큼 중요한 통찰력이 있을까 합니다.


정작 나의 관점이 빠져 있다면 무엇을 위한 통찰력인가 하는 자각이 드네요.


그러나 나 자신의 생각은 의미 없이 받아들인 수많은 생각과 언어로 가득합니다.

통찰력을 가지고 나의 머리 속을 들여다 본들 

불확실하고 애매한 정보들과 온전한 나의 생각들을 분리할 수 있을까요? 


원래 태생이 산만하고 이것 저것 호기심만 많은 존재다 보니

내 머리 속을 뒤져서 온전한 나의 관점이라는 것을 세울 수가 없으므로

기록을 하고 일기를 쓰고 글을 씁니다.

내가 쓴 글들이 모여서 축적이 되면 그 글들을 나의 관점을 정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죠....

쉬운 일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말을 받아들이고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나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유지하면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내가 상대나 작가가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서 있다면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글을 쓴다고 하면 상황은 더욱 힘들어지겠지요.


이런 상황이 되면 과연 나의 입장은 무엇이었는지 돌이켜보게 됩니다.

그리고 정작 나 자신의 입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각을 바꾸기 위한 통찰력이란 결국 나의 입장에서 사물을 어떻게 보고있는지 또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끄집어내는 힘입니다.(격물치지가 바로 이렇게 해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문득 떠오릅니다.)


책을 읽더라도 다시 나에게 묻고 그것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내용을 비로소 체득하게 됩니다.


그때의 생각이란 것은 이제 종전과는 같지 않습니다.

생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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