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행렬에 대한 단상
오늘 고속도로에 있었습니다.
귀성행렬과 같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차가 늘어서있는 길옆으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빠져나가기도 하고
일부 구간에서는 갇힌 기분으로 있기도 했습니다.
문득
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 연상되었습니다.
그들은 피곤을 무릅쓰고 오직 한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서 저렇게 막히는 길을
묵묵하게 기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 곳은 장소입니다.
그들은 지금 그들이 지내던 공간에서 장소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잠깐동안 순례자행렬과도 닮은 긴 자동차대열에 부러움이 생겼습니다.
공간은 비어있는 곳입니다.
비어있기에 쓸모가 많습니다.
다만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곳은 아닙니다.
장소는 유대감과 스토리가 있는 곳입니다.
고향이나 집이 대표적입니다.
마을 뒷산이나 어릴적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학교운동장도 장소입니다.
호텔이나 고속도로 휴게소는 공간입니다.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장소가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공간이죠...
도로변의 식당이나 심야 카페테리아 호텔의 로비나 역의 카페 같은 외로운 공공장소에서 우리는 고립의 느낌을 희석할 수 있고, 따라서 공동체에 대한 느낌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가정적인 분위기의 결여, 환한 불빛, 익명의 가구는 흔히 거짓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가정의 위안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통로로 여겨질 수 있다. (p11)
알랭 드 보통은 '슬픔이 주는 기쁨'이라는 책에서 역설적으로 말합니다.
장소가 아닌 공간에서 오히려 위안을 얻게 된다고.....
고립의 느낌을 희석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한번씩 늦은 밤 호텔 로비에서나 고속도로 휴게소, 공원의 편의시설 같은 곳에서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위안을 느껴보았던 저로서는 약간 찔끔하면서도 의아함을 가졌더랬습니다.
하지만 곧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적인 유대감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공공장소는 불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감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공공장소는 열린 공간이며
잠시 머물며 쉴 것이 허락된 공간인 거죠........
한 세대 전만 해도 그런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집에 가서 밥해먹자." "쉬더라도 집에서 쉬어야지."
지금은 정말 쉰다면 휴양지에서 쉬고 맛난 것이 먹고싶으면 맛집을 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공간이 더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유대감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대한민국은 살만한 나라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마트에서 장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ㅋ
어제는 문득 달을 보았습니다.
아직 한 쪽이 이지러져서 완전해보이지 않았습니다.
순간 낼 모레면 한가위인데 아직 저모양이어서 어쩐데 ...하고 걱정을 했더랬습니다.
그러다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아직은 모양이 덜 갖춰졌어도 한가위 저녁에 둥그런 달은 어김없이 떠오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