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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솔은정 Apr 28. 2024

언제나 듣고 싶은 말 "예뻐"

  

2019.07.28.-08.26     




보통 신화를 읽다 보면 영웅들은 늘 고향을 떠나고, 집을 떠나서 시련을 겪고, 모진 풍파를 다 헤치며, 그 과정에서 단단해지고, 훌륭해져 성공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결말을 맺는다. 물론 감동과 교훈도 주면서 말이다.  

 나는 1차 항암을 잘 마치고,

그이는 33회의 방사선 치료도 잘 마치고

우리는 4월 28일 전주를 떠나 병원살이를 같이 하다 3개월 만에 전주 집으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시작은 거의 신화급이다. 고향을 떠났고, 집을 떠나 병원살이를 했고, 시련은 아직 겪는 중이지만 일단 집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만세, 만만세다. 결말도 신화급이 되기를 꿈꿔본다.


 일상의 행복, 저녁 먹고 산책을 하며 이야기 나누는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있다. 고맙고 감사한 시간들이다.

  먼 길 떠나봐야 집의 고마움을 알게 되고, 아파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지.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운동하고 편히 쉬는 게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집에 오니 머리카락은 숭덩숭덩 빠지고, 온몸이 가렵다.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어 밤새 긁기 시작하다가 안 되겠길래 동네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 말씀이

“좀 쉬시는 게 좋겠어요. 너무 힘드시면 내과에 가서 수액을 맞으시고 쉬셔요.” 하신다.

“선생님. 전 지금 숨 쉬는 거 말고는 하는 게 없어요!”

항암 중이라고 하니 선생님이 할 말이 없다고 하신다.

쉬고 있는데 더 쉬라고 하니 어찌 쉬지?     

  머리를 짧게, 진짜 짧게 깎았다.

입대하는 날 훈련병 머리다.

빡빡이 스님 머리로 완전히 한 오라기의 머리도 없이 깎아줄 수는 없다고 한다.

미장원이나 이발소에서는 그렇게 안 해준다고 그런다.

면도날로 밀다가 다치면 안 되기도 하고, 그 상처로 감염되면 안 되니까 그런가 보다.

그저 최대한 짧게 깎아 달라고 했다.

재경 말로는 날씬해진 외삼촌 같단다.(내 귀에는 결코 칭찬이 아니다)

머리 깎을 때 울 거 같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쑥쑥 한 움큼씩 손에 잡히는 머리카락과 사방팔방에 돌아다니는 내 머리카락 보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자르는 게 위생도 환경도 나으니까 깎아버리니 시원하다.

다만 어제부터 낯선 내 외모에 거울보다 깜짝 놀라고, 두건 잊어버리고 쓰레기 버리러 나가다 엘리베이터 보고 놀라고, 아직 내 외모에 적응이 안 되고 있다.

 그이에게 내 머리가 예쁘냐고 물었더니

십 초쯤 지나서야 “예뻐~”라고 답한다.

늦은 답은 언제나 거짓말이라는 걸 난 안다.  이 남자의 가장 좋은 점은 정직인데,

그 정직을 꼭 쓸데없이 발휘한다는 게 문제다.

돈 드는 거 아닌데 이 남자는 입에 발린 말도 없다.

뇌수술 할 때, 마누라에게 사랑받는 언어 쪽은 아예 제거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와~ 색시는 머리가 짧아도 예쁘다.”였다.

답의 시간이 늦었지만, 정답으로 통과시켜 주기로 했다. 난 너그러우니까.

재경은 패셔니스타 같다 그러고

윤서는 순간 남자인 줄 알았다 그런다.

가슴도 없고, 난소도 없고, 머리카락도 짧고, 만약 이런 식으로 남녀를 구분하는 거라면

어쩌면 난 여자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저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언제나 듣고 싶은 말은

"예뻐요!" 란 말이다.  

아마 내 마음속 깊이 나는 별로 예쁘지 않음을 내가 알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멍청하다는 말은 견디겠는데. 못생겼다는 말은 슬프다.

 짧은 머리를 가리기 위해, 여자인 척하기 위해 가발도 사고 모자도 샀다. (가발 종류가 이렇게나 많다니)

항암하고 나니 항암시장도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았다.  손톱에 바르는 영양제부터, 항암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 엄청나게 많다. 그렇구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구나.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마케팅까지 하다니 놀랍구나.     

이 짧은 머리도 세상에나 여기저기 빠져서 베개에, 소파에 다 묻고, 힘들어서 안 되겠길래 그이에게 밀어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이 매일 면도하는 그 면도날로 머리에 샴푸질을 한 뒤 조금씩 밀어달라고 했다.

“무서우니까 천천히 살살해. 당신 살인 듯, 아니다. 윤서 살인 듯!”

“나는 매일 면도해. 그러니까 나는 완전 전문가야! 나를 믿어.”

“믿어볼게!”

“특별히 당신은 공짜로 해줄게.”

“뭔 소리야! 내가 돈도 안 받고 실습하게 해 주는데 나에게 고마워해야지!”

투닥거리면서 어쨌든 머리는 다 밀었다.

이제 빠져서 집에 머리카락 날릴 일은 없겠다.


 어렸을 때 내 기억 속 돌아가신 엄마는 늘 민머리의 엄마였다. 오랜 항암으로 10여 년을 넘게 외출 시에만 가발을 쓰셨으니까 말이다.

 어린 시절 외출하던 엄마를 배웅하고 마당에 있을 때 엄마가 웃으면서 다시 돌아오시길래

 “왜? 엄마?”

 “내 머리 봐.. 잊어버리고 가발도 안 쓰고 나갔어!”

할 정도로 우리는 엄마의 민머리에 익숙해 있었다.

나도 그렇게 되려나? 시간이 지나면 내 민머리에 익숙해지려나?

머리 깎고 나니 내 모습이 훤히 보인다.

눈썹도 없고, 코털도 없고, 머리카락도 하나도 없네.

머리숱이 너무 많아서. 겨드랑이 털이 너무 많아서 고민했던 나는 없고,

허연 두부 같은 얼굴이 나를 보고 있네!

아. 내 두상은 이렇게 생겼구나.      

“여보! 나 못생겼지?”

이 남자는 속도 없이 웃는다.

“스님이랑 사는 거 같아.”

“나 볼 때마다 합장하고 인사해!”

“나 머리카락 자라면 다이슨 드라이기 사주라!”

“당연하지!”

 뇌수술로 머리를 깎아 훈련병 머리 같던 그이는 이제 제법 머리카락이 자랐다.

내 앞에서 자기 머리는 헤어롤로 말아진다면서 나를 놀리지만, 내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금방 자랄 거라고 위로한다.

 "다음에 항암 하러 갈 때 좋은 가발 사줄게. 그리고 대머리여도 이뻐."

 매일 함께 걷는 천변-노을이 예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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