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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25. 2023

차별과 오명의 공간, 전라도에 대하여

책리뷰 『전라디언의 굴레』(조귀동, 생각의힘)

『전라디언의 굴레』(조귀동, 생각의힘)를 읽었다.


“호남 청년들의 지역 탈출은 계속되고 있다. 산업화 시절 있었던 호남인의 디아스포라는, 사실상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99p)


호남 출신인 나는 스무 살에 대학을 명분으로 지역탈출에 성공했다. 모부의 허락도 없이 정시 가나다 모두를 수도권 대학에 응시함으로써 지역에 남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그리고는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서울 가서 성공할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 상류지향이던 나에게 서울은 가능성과 기회의 땅이었고, 전라도는 약점이자 벗어나야 할 굴레였다. 열아홉살이던 나는 야망 많은, 시골 사는 여자애였다.


어릴 적 서울에 살던 사촌들이 내 사투리를 조롱하거나, 깡시골에 산다며 놀리던 것을 제외하고는, 직접적인 지역 차별을 경험한 적은 없다. 또한 그 당시 경험한 차별은 ‘호남인’이라는 특수성보다는 단순히 시골 거주에 대한 차별에 가까웠으니. 하지만 호남을 탈출해 수도권에 정착한 이후, 나를 소개할 때마다, 정확히 내 출신 지역을 언급할 때 어쩐지 마음 한켠이 위축되어 있었다. 상대는 전라도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나를 깔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면서. 비록 내가 호남 출신인 것은 부끄러운 사실이 아니었지만 상대에게 나의 단점이 지역성에 근거한다는 인식을 주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나의 지역적 출신 배경이 플러스가 되는 상황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므로. 그 예로 나는 나의 사투리를 빠르게 표준말로 ‘교정’했다. 적어도 20대 초반까지, 그렇게 나는 ‘전라디언의 굴레’ 안에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나는 호남을 벗어난 수도권에서 살아온 지, 그전에 호남에 살았던 기간과 엇비슷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호남인의 정체성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고 느낀다. 차별받는 상징적인 집단으로서, 나에게 ‘전라도’는 여성 다음으로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니까. 따라서 여전히 호남은, 한갓지게 고향으로 호명하며 향수의 대상으로 바라봐지지 않는다.


이 책은 호남 출신이자 지금도 그 땅에 살고 있는 저자가 “지역과 계급이라는 이중차별”의 굴레에 있는 전라도를 분석하고 있다. 전라도에 대한 지역차별이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형성되어 왔는지, 그리고 차별의 물적 토대는 또다시 문화를 구성하고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음에 관하여. (탁월한 분석은 서문에서 멈춘다는 점이 유감스럽지만)


서문에서 저자는 ‘치킨’을 통해 호남 차별을 고찰한다. 호남이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과 위상을 차지하는지, 치킨이라는 하나의 산업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서울이 치킨을 소비하고, 대구가 치킨회사를 만든다면, 전북은 치킨 원가의 10% 남짓인 닭을 길러 납품한다. 모두가 꺼리는 저부가가치에 더럽고 힘든 일을 떠맡아야 했던 호남의 역할이, 오늘날 치킨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재연되는 셈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전라디언’이라는 멸칭은 호남인들이 경험하는 차별을 정확히 나타내준다. “일종의 인종차별에 가까운 지역차별”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흑인과 마찬가지로 이등시민 대우를 받은, ‘하얀 깜둥이’로 불리던 미국 내 이민자 집단을 연상케 하는 차별이라는 분석에 공감한다.


전반적으로 호남 출신으로서 차별의 역사와 현재진행형인 그 여파에 관한- 속상한 이야기 투성이다. 나 역시 내부자이기에 도저히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든 호남 이야기.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는 호남 내부의 정치와 경제 상황에 대한 전망과 과제 부분은 너무나도 어두워서 마음이 착잡해질 뿐이고. 하지만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호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결의지를 가진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는 점은 다행히 희망적이다.


“호남의, 호남에 의한, 호남을 위한 담론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새로운 지역사회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269p)


여전히 나의 약점이자 치부처럼 다가오는 오명의 공간, 전라도에 대하여.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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