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원에도 봄이 와요>에 대한 호평 일색이던데, 좋아하는 배우가 전혀 나오지 않는터라 정주행할 자신은 없어 관심이 가는 회차- 워킹맘을 다룬 5회만 보았다. 공감되는 장면도 있었지만 불편한 부분도 더러 있었다.
주중에는 일과 대부분 시간은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덕분에 여러 활동을 하지만 아기의 건강상태에 따라 언제든 내 일이 차선이 될 수 있는 조건에서, 항상 아슬아슬한 곡예를 타는 기분이다. 저녁에 이뤄지는 일정 중에 남편과 분담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아기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싶어 짱돌을 굴리다 지쳐버리기 일쑤다. 오늘도 다음주 일정 중 하나가 아기를 동반하기에는 마음에 걸려 지인 물색부터 시간제 보육까지 알아보다가 포기했다.(최소 9시까지는 맡겨야 하는데 8시까지만 봐준다고 함) 결국 데리고 일정을 소화해야겠다,고 판단하기까지 두뇌 풀가동에 허비한 에너지가 투머치해서 허탈한 느낌이..
엄마노릇이 힘든 건 이런 면에서다. 실제로 몸을 써서 수행하는 각종 노동이 힘든 건 부차적이고, 24시간 누군가의 삼시세끼를 고민하고 모든 상태를 장악하기 위해서 바짝 신경이 곤두서는 것, 그걸 잘 수행하고 말고를 떠나서, 계속해서 신경 쓰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 어찌나 고도의 지적노동인지. 내 시간을 확보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욕망과 육아 사이에서 조율하고 타협점을 찾는 시도 만으로도 지치는 요즘이다. (설마, 나만 힘들어? 이 세상 엄마들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고통에 과묵하고 인색하므로 나라도 떠들어야겠음.ㅋㅋ)
그래서 이럴 때마다 무기력증이 도진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아기는 쑥쑥 자라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테고, 나 역시 내 앞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 고단하더라도 내 것을 잃지 말고 지켜내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다만 너무 애쓸 필요는 없다며.
어쨋거나 이 드라마 5부에도 어린 자녀의 유치원 하원 시간에 퇴근하지 못하고 종종거리는 워킹맘이 나온다. 다행히 선량한 이웃이 커버해주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번아웃되는 모습, 특히 모두가 잠든 늦은 밤 홀로 잠들지 못하고 가사노동을 하다가 울컥 올라오는 속상한 마음에 개던 빨래 집어던지면서 엉엉 속시원히 울지도 못하는 모습, 여전히 빨래를 개는 손동작 따로, 감정 따로 노는 장면은 워킹맘의 분열된 자아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재현했다.
그런데 동의하지 않는 전반의 맥락은 엄마들이 자녀의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모습들이었다. 시사프로도 아닌 드라마가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는 엄마들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다룰 필요는 없지만, 그리고 이 모습이 한국 사회의 표준적인 군상을 보여준다는 데 이의는 없지만 뭐랄까, 비정상적인 사회 모순을 ‘모성’으로 퉁치는 느낌이다. 결국 자녀의 성적에 큰 책임은 엄마에게 있다는 것-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시선에서는 ‘(일하느라 바빠서 케어 못해주니) 저러니 아이가 우울하지’라며 아이의 정서에 대한 책임까지 은연중 엄마에게 전가시키게 된다.
마지막 부분에 워킹맘 두 명이 거울효과로 자신을 직면하면서 나를 위한 삶으로 한발 내딛는 것처럼 희망적으로 마무리되는데, 사실 나는 이 부분도 이중메시지로 보였다. 결국 엄마는 자녀 공부도 하드캐리 해야 하지만 자녀가 공부에만 몰두한 나머지 우울해서도 안되며,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야 한다는 것 역시 결국 아이를 위한 근본적인 모성 실천 이데올로기로 느껴졌다. 결국 드라마가 슈퍼맘, 모성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마지막에 주인공이 연차내서 자신을 위한 시간 보낸다며 여행가방 싸서 나가면 해결되는, 이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잖아?
그리고 사실 개인적으로 몰입이 방해된 큰 이유는, 주인공은 육아금수저였다는 점이다. 친정엄마가 평소에 아이 하원 다 커버쳐주며 남편 육아참여도 역시 높은 편이고, 드라마에서 몹시 괴로웠던 몇일은 동생네 아기가 아파서 엄마가 거기 가느라 육아 공백이 잠시 생겨서 폭발했기 때문이었음. 그래서 결국 이 드라마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정작 딸자식들의 아이를 교대로 돌보는 워킹맘의 엄마 같다는 판단과 동시에(황혼 육아하는 워킹맘의 엄마를 주인공으로!) 그저 완전 부럽다는 마음 뿐이고.
그래서 ‘나한테 그런 친정엄마 있다면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친정엄마가 아이 봐줄 가능성 1도 없는 사람 입장에서 뻥카를 날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