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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훈 Jul 02. 2020

그 많던 가락국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우동코너에 들러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꼬치어묵우동’, ‘김치냄비우동’ 따위의 우동 종류를 훑어보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예전엔 가락국수라고 쓰여 있지 않았나?’

     

 어린 시절 아빠의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기회는 많아야 일 년에 두 번 남짓이었다.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우리 가족은 어두운 하늘색 르망을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연휴 전날 아침부터 아빠는 심각한 얼굴로 교통 방송을 들었다. 라디오에서는 ‘서울 요금소에서 대전까지 몇 시간이 걸리며 호법분기점에선 심한 정체가 시작되고 있다’ 따위의 교통 정보를 끊임없이 전해 주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아빠는 커다란 지도책을 펴놓고 나름의 귀성 계획을 세웠다. 잠실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열여덟 시간(정말이다. 그땐 그 정도 걸렸다.) 정도 걸렸던 걸 생각해보면 아빠의 계획은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구형 르망이 올림픽 대로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차들은 쉽게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린 나는 경부 고속도로에 채 들어서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끝없는 차량 행렬에 맞춰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휴게소에 도착해 있었다. 부산까지 가는 방법이라곤 그저 경부 고속도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가는 방법밖에 없던 시절이다. 부산까지 이백 킬로미터 남짓 남은 금강 휴게소나 추풍령 휴게소에서 아빠는 차를 잠시 멈췄다. 졸린 눈을 비비며 휴게소로 들어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가락국수를 먹고 있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굵은 글씨로 ‘가락국수 코너’라고 쓰여 있었다. 그 간판 아래선 끊임없이 가락국수가 만들어졌다. 그 당시의 휴게소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우리 가족도 어김없이 ‘가락국수 코너’ 앞에 줄을 섰고, 각자 한 그릇씩의 가락국수를 비웠다. 난 그 가락국수를 무척 좋아했다.     

 가락국수는 일본의 우동을 우리말로 순화한 단어다. 팔십 년대 일어난 우리말 순화 운동의 일환으로 우동이란 일본 음식은 가락국수라는 우리말 단어로 순화되어 불렸다. 그야말로 가락국수의 성지였던 대전역에서부터 전국 각지의 휴게소까지 우동이라 적혀있었던 간판은 가락국수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달렸다.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꿨을 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가락국수는 우동과는 다른 고유의 특징을 가지기 시작했다. 우동보단 얇지만 칼국수보단 두꺼운 면발을 가지고 가쓰오부시가 아닌 멸치나 디포리로 국물을 냈다. 미묘한 차이 같지만 우동과 가락국수는 분명 다른 음식이었다. 말하자면 현지화가 된 것이다. 중국에 짜장면이 없는 것처럼 일본에도 가락국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말로 바꿔 달렸던 휴게소 가락국수 코너의 간판은 이제 다시 우동이 되었다. 같은 음식을 가지고 굳이 우동이라는 일본어를 붙여 판매하고 있다. 흔히 ‘휴게소 우동’, ‘분식집 우동’이라 부르는 가락국수의 맛과 일본 정통의 우동 맛은 다르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가락국수라는 이름이 사라지는 건 아쉽다. 염연히 다른 굵기를 가지고 있는 가락국수면을 우동면이라고 부를 필요가 있는 걸까. 가쓰오부시 대신 멸치를 쓰고 시치미 대신 고춧가루를 뿌려먹는 음식을 우동이라고 퉁치는 건 역시 아쉽다.


 이젠 더 이상 아빠의 차를 타고 가락국수를 먹으러 갈 수는 없다. 가락국수를 좋아하던 꼬맹이는 이제 운전석에 앉아 이십 년 전 아빠가 했던 역할을 이어받았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다양한 식사메뉴가 생겼고 몇몇 휴게소에는 통째로 유명식당이 들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우동이라 불리는 가락국수를 먹는다. 다시 가락국수라는 이름을 그곳에서 보고 싶다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우동을 가락국수라고 부르자는 건 피자를 서양식 빈대떡이라고 부르자는 것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인 생각일까?

 가락국수, 가락국수.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해본다. 난 역시 ‘가락국수’의 어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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