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센베이 과자를 무척 좋아했다. 즉석 과자나 옛날 과자 같은 성의 없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과자를 엄마는 자주 사 먹었다. 잠실 시영아파트에 살던 시절 걸어서 십 분 거리의 성내역(지금은 잠실나루 역으로 바뀌었다.) 앞에는 늘 센베이 과자를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일반적인 과자엔 손도 대지 않던 엄마는 지하철을 타고 외출할 때마다 그 센베이 과자를 한 봉지씩 사 들고 왔다. 엄마는 그때마다 내게도 과자를 건넸지만 내게 그건 너무 어른스러운 맛이었다. 난 웨하스와 산도를 좋아했다. 크림은 반드시 들어있어야만 했고, 달달한 맛이 온 입에 퍼지는 그런 과자를 좋아했다. 김 맛과 생강 맛이 나는대다 녹아없어지긴 커녕 딱딱해서 씹기도 힘든 그 과자를 엄마는 왜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가 다급하게 날 불렀다. 엄마의 손엔 역시나 하얀 센베이과자 봉지가 들려있었다. 엄마는 놀라서 뛰어온 날 힐끔 보더니 봉지를 부욱 찢어 식탁에 펼쳐놓았다. 그곳엔 여느 때처럼 부채꼴 모양의 김 과자와 동그랗게 말린 생강과자, 오늘따라 더 딱딱해 보이는 오란다 과자가 있었다. 에이 뭐야 라고 말하며 시큰둥하게 돌아서는 나를 엄마는 붙잡았다. 오늘은 새로운 과자가 있다며 처음 보는 과자 하나를 내 손에 얹어주었다.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의 새하얀 과자였다. 난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억울하다는 듯 “딱 네가 좋아할 맛이니 먹어보라.”라고 했다. 그 미지의 과자를 한입에 털어 넣고 씹었다. 겉을 감싸고 있는 하얀 전병은 입안에 넣는 순간부터 녹아내렸고 그 속엔 달달하고 찐득한 크림이 가득 들어있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음은 말할 것도 없다. 과자를 씹음과 동시에 내 눈은 커다래졌고 엄마는 그런 날 보며 ‘거봐, 맛있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후 엄마가 사들고 오는 센베이 과자 봉지에서 김 맛 과자와 생강 맛 과자는 자취를 감췄다. 그 속엔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오란다와 하얀 크림 과자만 들어있었다. 잔뜩 신난 나는 크림 과자를 잔뜩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렸다. 엄마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엄마는 오란다 과자를 잘게 쪼개 천천히 오래 씹으며 날 바라봤다. 엄마는 센베이 과자를 예전보다 더 자주 사 왔다.
얼마 전 삼각지 근처를 지나다 센베이 과자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과자점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을 멈추고 들어간 그곳엔 정말 센베이 과자가 잔뜩 있었다. 내가 김 과자라고 불렀던 그 과자에 뿌려져 있던 가루는 김이아니라 파래였으며 엄마가 좋아하는 오란다 과자는 돌 강정이라고 적혀있었다. 근 단위로 판매하는 과자 가격은 구천 원이었다. 성내역 아저씨의 과자가 삼천 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십 년간 세배쯤 오른 가격은 이십 년도 넘게 똑같은 모양과 맛으로 매일 과자를 구워낸 그들의 수고에 비하면 무척 저렴한 편이다.
왠지 모를 감상에 젖은 나는 내 추억 속 크림 과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매장엔 보이지 않았지만 모든 종류를 진열하지 못하였다고도 적혀있었다. 내 설명을 듣던 사장님은 어떤 걸 이야기하는지는 알겠으나 그 종류는 인기가 없어 꽤 오래전부터 만들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렇게 맛있는 과자가 대체 왜 인기가 없었을까 싶었지만 붙잡고 이십 년 전의 과자 얘기를 떠들기에 사장님은 무척 바빠 보이셨다. 난 구천 원을 내고 과자 한 봉지를 샀고, 이만 오천 원을 내고 과자 선물세트 하나를 구입했다.
그날 저녁 난 거금을 들여 구입한 센베이과자 선물세트를 들고 엄마를 찾아갔다. 이십 년 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난 상자의 포장을 풀고 과자를 식탁에 잔뜩 늘어놓으며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샀다고 말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오란다 과자의 비율을 높여 새로 포장해 온 그 상자를 보며 엄마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엄마 이 과자 좋아하잖아. 일부러 더 많이 달라고 했어.”
“그래 이거 참 좋아했지. 근데 이제 이거 먹기 힘들어.”
“왜?”
“나이 들어 이가 시원찮아서 그렇지 뭐. 이렇게 딱딱한 건 못 먹겠더라.”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잘 감추고 파래 과자와 생강과자를 엄마에게 밀어주었다. 그리고 난 생강과자 하나를 들어 우적우적 씹었다.
“이게 훨씬 맛있네, 생강과자 먹어.”
“이제 그것도 잘 먹네? 어릴 땐 그렇게 싫어하더니. 근데 그건 안 사 왔어?”
“어떤 거?”
“너 좋아하던 거. 크림 든 거 있잖아.”
“아, 안 그래도 물어봤는데 그건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 아들 아쉽겠네?”
“아쉽긴, 나도 이제 너무 단건 싫더라고.”
엄마와 나는 식탁에 앉아 선물세트에 들어있던 센베이과자를 절반쯤 해치웠다. 정확히 말하면 거의 나 혼자 절반을 먹었다. 엄마는 요새 혈당 수치가 높아졌다며 과자 한 두 개를 먹다 말았다. 일부러 많이 넣어달라고 했던 오란다 과자가 잔뜩 남았다. 작은 조각 하나를 들어 입에 넣었다. 물엿으로 코팅된듯한 과자는 생각보다 훨씬 달았다. 예전에도 이렇게 달았나 싶을 정도로 무척 달았다. 너무 달아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속으로 ‘이런 걸 그렇게 먹었으니 나이 들어서 혈당 수치가 높지.’하고 생각했다. 눈물을 흘릴 일은 아니다. 엄마는 이제 센베이과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