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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훈 Apr 30. 2020

백종원의 골목식당과 엄마의 식당

 2년 정도 티브이 없는 삶을 살았다. 화곡동 꼭대기의 좁디좁은 원룸에선 티브이 한대 들여놓을 공간도 빠듯했다. 없는 것이 생각보단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읽는 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거나 조용한 사색을 통해 나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킨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었다. 이럴 바엔 그냥 티브이를 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고 티브이도 들여놨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리모컨의 무게감은 날 괜스레 두근거리게 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하도 티브이를 안보다 보니 요새 어떤 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은 채널에 눈이 핑핑 돌아갈 지경이었다. 그때 한 프로그램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나처럼 먹는 것에 죽고 못 사는 사람들에게 백종원이라는 이름은 돌아가는 채널을 잠시 멈추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워낙 유명한 프로그램이다 보니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간단히 말해보자. 대한민국 요식업계의 대부 백종원 대표가 각 지역의 죽어가는 골목식당들을 찾아가 그의 마법 같은 솔루션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한다. 궁극적으로는 그로 인해 '이 골목의 상권을 살려보자'라는 대의적인 기획의도를 가진 프로그램이다.

 나는 거의 전편을 다 볼 정도로 팬이 되었다. 백종원 대표는 그야말로 요식업의 대부답게 전국 방방곡곡의 골목을 누비며 신들린 듯 죽어가는 식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냉철한 사업가라고 생각했던 백종원 대표는 생각보다 객관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객관적일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 맛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는 음식보다 사람을 더 보는 듯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요식업의 대부는 초면의 어색한 대화 대신 그 식당의 주방을 통해 사장님을 알아가려 한다. 그곳엔 절박함이 묻어있는가? 사장님의 고민이 떠다니는가? 몇 평의 좁은 주방에서 애잔함이 보인다면 음식 맛은 없더라도 마지막엔 희망을 던져준다. '같이 고민해보자'라고 한다. 음식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도 그 주방 속에 전쟁 같은 요식업계에서 살아남을 만한 '진지함'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불호령을 내린다.(여담이지만 장교 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백종원 대표의 ‘갈굼’ 스킬은 최상급임에 분명하다.) 맛이 있으면 방송을 통해 알려주면 된다. 백종원 대표는 맛이 없는 집의 주방을 더욱 꼼꼼히 살핀다. 그동안 상황실에 있는 mc들은 사장님의 인생을 들여다보려 애쓴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음식의 맛을 볼 수 없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볼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맛본다. 백종원 대표가 맛있다고 한들 모두가 맛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긴 줄을 감수하고 그가 솔루션 해준 가게를 찾아간다. 심지어 맛이 없다고 했던 가게들도 줄이 늘어선다.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겠지만, 그의 인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사장님의 주방에 공감해서, 어쩌면 감동해서 일지도 모른다.



흔치 않은 짤이다

 

 엄마와 이모가 순대국집을 운영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아빠도, 이모부도, 옆집 아저씨도 사업에 실패했던 IMF 무렵이었다. 누군가의 어머니였던 그녀들은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외환위기건, 국가부도이건 살아남아야만 했다. 내 새끼들 밥은 굶길 수 없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긁어모아 일산 마두동 삼성아파트 앞 상가에 순대국집을 개업했다. 상호는 ‘순대일번지’였다.(가게 이름은 괜찮지 않은가?)

 엄마도 이모도 부지런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었다. 잘 나가는 순대집에서 몇 개월을 사정해 큰돈을 주고 순대 레시피를 배웠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돼지뼈로 진한 사골 국물을 끓였고, 신선한 부산물을 받아 한 줄 한 줄 직접 순대를 만들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순대 일번지’로 자전거를 달려 뚝배기에 부글부글 끓여낸 순대국 한 그릇을 먹었다. 매일매일 먹다시피 했지만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아이가 보기에도 그녀들은 노력했고 무척 절박해 보였다.

 모두가 어려웠던 IMF 시절임을 감안해보면 손님은 꽤 있었다. 하나둘씩 단골들도 생겼다. 가끔은 학교가 끝나고 찾아간 순대일번지가 만석이라 그 순대국집 아들은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 일도 있었다. 서툴게 끓인 라면을 먹으며 어쩌면 우리 집이 부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집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내 기준에 순대국 맛집이었던 순대일번지의 메뉴는 점점 늘어났다. 의욕에 넘쳐 보였던 이모는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아졌고 엄마는 술을 마신 이모의 몫까지 일 하느라 불만에 차있었다. ‘순대일번지의 메뉴는 여름 특선 김치말이 국수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고, 그 자리는 지금까지도 영업하고 있는 대박 난 반찬가게가 되었다.

 엄마는 그 후로 오랫동안 이모를 보지 않았다. 자세한 사정을 알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나중에도 물어보지 않았다. 이제는 왜 그 자매의 사이가 틀어졌는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일식당의 종업원으로 취직했고, 이어진 이십 년간의 고생은 엄마를 대출 없이 아파트를 소유한 중산층으로 만들어 주었다. 순대일번지의 개업에 맞춰 일산으로 이사 왔던 나는 그곳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몇 년 전 이모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이모의 영정 앞에서 오열했다.



순대일번지 터(?)에 생긴 반찬가게 근방에선 맛있다고 소문난 곳이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골목식당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모랑 원수 진 이야기는 그렇다 치고, 도대체 순대일번지는 왜 망했을까. 엄마의 대답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글쎄 이상하게 돈이 안 남더라고.” 납득이 되질 않았다. 내 기억엔 분명 많이 팔았는데... 저녁에도 모둠순대나 수육에 한잔하는 동네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다시 한번 물었다. “아니 뭐 그렇게 대박집은 아니었어도 망할 정도는 아니지 않았어?” 엄마는 다시 대답한다. “그러니까, 장사할 때는 막 바빠서 죽을 거 같은데 그날 번 거 가지고 다음날 재료 사고 나면 돈이 없더라고.슬며시 골목식당 애청자의 감이 날카로워진다. 다음 질문 하나로 순대국 맛집 순대일번지가 왜 망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순대국 원가가 얼마였는데?” 엄마가 대답한다.

 “몰라.

 맙소사. 골목식당에 나오는 빌런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백종원 대표는 모르는 건 죄가 아니라고 했다. 이제부터 알아가면 된다고 말한다.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잘 몰라서 실수한 사장님들에겐 관대하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 그러나 알고도 안 하는 건 죄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겐 특유의 갈굼(?) 스킬을 활용해 개과천선 하도록 애쓴다.

 엄마의 대답을 듣고 생각했다. ‘순대일번지가 지금 골목식당에 나온다면 백종원 대표는 무슨 말을 했을까? 티브이를 보던 시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요식업에 뛰어든 생각 없는 두 아줌마들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혹시 남편들의 사업실패에 요식업에 뛰어든 절박하고 부지런한 아줌마들로 힐링 가게에 등극할지도! 맛은 있는데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를 백종원 대표가 솔루션 해준다면 대박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피식피식 웃게 되는 부질없는 상상의 끝엔 결국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전쟁 같은 요식업계로 뛰어든 두 어머니만 남는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 무작정 부딪혀봤던 두 아줌마가 남아있다. 실패해서는 안 되는, 두 번의 기회는 없는 상황에서도 망할 수밖에 없었던 초보 사장님들은 순대국 집에서 김치말이 국수를 말아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녀들은 수많은 골목식당 사장님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두 번의 기회는 없는 사람들. 그야말로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 어쩌면 그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열심히 했지만 실패해버린 수많은 일들 속의 나 일지도 모른다.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지만 단 한 번의 실패조차 용납하지 않는 세상에도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 인생을 쓱 들여다보고 '열심히 하셨네요. 근데 몰라서 못했던 부분들이 보여요 한번 같이 고민해봅시다.'라고 말해준다면 어떨까. 적어도 허무하게 망해버렸던 제2순대일번지가 나올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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