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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훈 Apr 02. 2020

가장 맛있는 초밥

 제목을 보고 들어온 사람에겐 조금 생뚱맞겠지만, 만화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당신의 인생 만화는 무엇인가? 아마 수많은 명작들이 떠오를 것이다. 내 또래 사람들은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를 떠올릴 것이고, 그보다 조금 더 어린 친구들이라면 원피스나 나루토, 혹은 요즘 인기 있는 어떤 웹툰 일지도 모른다. 그 질문을 누군가 나에게 한다면 난 ‘미스터 초밥왕’이라 답하겠다. 슬램덩크나 드래곤볼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므로 약간의 설명을 덧 붙이자면 주인공은 일본 오타루에 있는 한 작은 초밥집의 아들 세키구치 쇼타. 그는 오타루를 거점으로 하는 전국적인 거대 초밥 체인 ‘사사 초밥’의 악행과 방해에 맞서 꿋꿋하게 일본 제일의 초밥 요리사를 향해 달려간다. 사실 스토리라고는 별거 없는 전형적인 소년 만화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때만 해도 한국에선 지금만큼 대중적이지 않았던 초밥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



출처-미스터 초밥왕 단행본


 난 초밥이란 음식을 그때 처음 접했다. 1990년대 중반, 초밥은 고급 일식집이나 호텔 일식당 정도 가야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당연히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 집 살림엔 먹어보기 힘든 음식이었다. 그런 생소한 소재로 그려낸 만화책을 학교 친구에게 빌려보고, 만화 대여점에 가서 또 빌려보고, 기껏해야 열한 살쯤 되었을 꼬맹이가 뭘 알고 초밥을 소재로 한 요리 만화에 그렇게 열광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두근거림은 잊을 수가 없다.


 어릴 적부터 먹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초밥이란 신세계를 알게 되었다. 당연히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단 한 가지 문장은 '먹고 싶다'였다. 지금도 어머니에게 철딱서니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나다. 당연히 그 시절의 내가 우리 집 경제사정을 고려했을 리 없다. 당장 어머니에게 초밥 사달라며 떼썼다. 뜨거운 여름, 반 지하 방의 더위를 식혀 줄 선풍기 한 대도 사기 힘든 형편에 그 비싼 초밥을 사서 나에게 먹인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어머니로써는 어이가 없었겠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아들내미가 먹고 싶다며 떼를 쓰니 마음이 아프셨나 보다. 알겠다며 며칠 기다려보라 하셨다.(지금 글을 쓰면서도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머니는 내심 믿는 구석이 있으셨다. 그 당시 어머니가 일하셨던 곳이 근처 일식집이었던 것. 일산 주택 단지에 일식집이 모여 있는 골목이 있었고, 어머니는 그곳에 있던 일식집 중 한 곳에서 서빙을 봐주고 계셨다. 미식가로 소문난 탤런트 박근형 씨가 단골이었다고 하니,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수준 있는 일식집이 아니었나 싶다.


 이틀쯤 지났을까 어머니가 퇴근길에 봉지 하나를 들고 오셨다. 거기엔 어머니가 사장님에게 고개 숙이며 부탁했을 초밥 일 인분이 들어있었다. 철딱서니 없는 나는 그렇게 생애 첫 초밥을 먹게 되었다. 그 초밥은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내려놓은 자존심이었을 수도, 어쩌면 힘들게 벌어 낸 하루치 일당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일반적인 초밥 일 인분의 구성으로 기억된다. 광어 몇 개, 새우 몇 개, 오징어와 조개류 몇 개, 그리고 참치. 만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미스터 초밥왕엔 초밥이 맛있으면 박수를 치는 심사 위원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미 난 그 작품에 무척이나 매료된 상태. 초밥을 하나 집어 먹을 때마다 짝 짝 박수를 치며 먹었다. 특히 하나뿐인 참치를 집어 먹을 땐 세 번 정도 박수를 쳤던 것 같다.(그때도 비싼 건 알았었나 보다). 난 만화에 나오는 동작들을 따라 하며 즐거워했을 뿐이지만, 옆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그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으셨던 듯했다.(하긴 열한 살짜리 꼬마가 신이 나서 박수를 쳐대며 초밥을 먹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 뒤로 내 생일 이거나 특별한 날에 하는 외식은 늘 초밥이었다. 부산이 고향인 어머니는 회나 해산물을 즐겨 드시는 편이 아니었다. 어쩌다 외식을 해도 고기류를 선호하셨는데, 내가 초밥을 먹게 된 후 지금 까지도 나와 함께 식사를 할 때면 늘 ‘초밥 먹을래?’라고 물어보신다. 그리고 함께 초밥을 먹으며 한잔 기울일 기회가 있으면 그때 이야기를 하며 눈물 지으신다. 당신의 가난과 행복해하던 자식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고 하신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난생처음 초밥을 먹으며 행복했던 기억과 지금 어머니의 눈물이 겹쳐 보인다. 우리 가족에게 초밥은 ‘애증’이다.


이 분이 바로 그분이다(출처-미스터 초밥왕 단행본)


애증의 초밥


 신라 호텔 일식당에서 나오던 초밥 수준에 격노하시어 몸소 일본의 초밥 장인들을 한국으로 데려오셨다는 이건희 회장님의 전설적인 일화가 있다. 그 뒤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초밥 업계는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동네 마트에서도 가볍게 먹을 만한 초밥을 구입할 수 있고, 중저가부터 어마어마한 고가의 오마카세까지 가격대 별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미스터 초밥왕’에 열광하던 어린 소년도 덕분에 많은 초밥을 맛볼 수 있었다. 일 인분에 15만 원 하던 오마카세도, 그보다 더 비싼 일본의 미슐랭 초밥집도 훌륭했지만, 그곳은 내게 박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어딘 가에서 초밥을 먹고 박수를 친다는 것이 민망하고 유치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실제로 그곳의 초밥이 내 기준에 못 미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건 결국 내가 먹고 박수를 쳤던 초밥은 어머니가 들고 오셨던 25년 전의 그것뿐이다. 박수가 기준이 된다면 내게 가장 맛있었던 건 그 초밥이다. 어떤 비싸고 좋은 초밥도 그것을 뛰어넘지 못했다. 어쩌면 어린 내게 초밥을 만들어 줬던 그 일식집의 주방장은 미슐랭 초밥 장인과 견줄 만한 실력을 가진 은둔 고수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인생 만화 ‘미스터 초밥왕’은 전국 대회 결승에 진출한 쇼타가 우승을 위한 초밥이 아닌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위한 초밥을 만들어 심사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우승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결국 많은 돈을 들인 화려한 재료들로 우승하려 한 ‘사사 초밥’보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진실된 마음으로 만든 쇼타의 초밥이 더욱 맛있다는 것. 슬쩍만 들어도 유치한 것이 애들 만화 구만 싶다.(어릴 때도 유치하다 싶었다. 정말이다.)

 나이가 들면 어릴 적 유치하게 만 보였던 것들이 다시 보일 때가 있다. 이를 테면 나이가 들어 다시 찾아간 경주 같은 곳이 그렇다. 고리타분한 역사 유적지에서 천년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보물 같은 곳이 되는 데는 20년쯤의 세월이 걸린다. 나에겐 ‘미스터 초밥왕’이 그랬다. ‘음식에는 비싸고 화려한 재료보다 중요한 것이 많아’라며 교과서 같은 말을 남겼던 만화책은 어른이 된 내게 다시 다가왔다. 한 모자에게 ‘애증’이란 단어로 기억되었던 초밥 체험기와 함께. 내가 그 비싼 초밥집들을 가면서도 한 번도 박수를 치지 않은 건 박수를 칠 만한 초밥은 정말 그때 그 초밥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단 사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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