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훈 Apr 09. 2020

미식가 지망생에게 줄 서기라는 것

 난 음식을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행복은 내 삶에 무척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대단한 미식가는 될 수 없을지 모른다. 맛집에 가기 위해 응당 감내해야 할 줄 서기는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인내심이 부족한 미식가 지망생 정도라면 조금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웃기는 일이다. 맛집을 찾아 멀리까지 가는 수고는 마다하지 않으면서 줄 서는 건 싫단다. 인터넷에서 세상 모든 음식점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다. 맛있다고 소문난 곳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지사. 게다가 사람의 체란 아무 때나 배고프다고 말하지 않으니 밥 먹을 시간에 맞춰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선 마땅히 대기줄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이 내게는 참 어렵다. 백종원 대표는 맛집에서 기다리는 것 또한 맛집을 즐기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어 본다. 하지만 찾아간 그곳에 줄이 늘어서 있다면 이내 발걸음을 돌려버린다.


 그 뒤에 벌어지는 일들은 대개 이런 식이다. 근처에 대기 줄이 없는 적당한 음식점을 찾아 들어간다. 원래 가려고 했던 그곳과 같은 메뉴라면 금상첨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식당을 스윽 둘러본 다. 여기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메뉴판 가장 위에 있는 음식을 주문한다. 큰 수고를 하지 않았다. 그저 몇 발자국 걸어 출입문을 열고 적당히 빈자리에 앉았을 뿐이다. 그런 경우 나는 300의 크세르크세스 1세만큼이나 관대해진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저 그 음식을 입에 밀어 넣는 일 만을 반복한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인지 생각보다 음식 맛이 나쁘지 않네 라고 중얼거리며 문을 나선다. 건너편 맛집에 있는 줄이 아직도 줄어들지 않은 것을 보고 ‘이 집도 괜찮은데, 굳이 왜 저렇게 줄을 서지’ 생각하곤 왠지 모를 뿌듯함에 웃음 짓는다.


그렇습니다


 아바이순대로 유명한 속초 아바이마을을 찾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곳엔 단천식당이라고 하는 유명한 맛집이 있다. 강호동 씨가 진행하던 1박 2일이란 프로가 아바이마을을 소개했고, 멤버들은 단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나도 그 방송을 봤었는데 오징어순대가 참 맛있어 보였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방송 후 단천식당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리기 시작했다. 작고 허름한 식당이었던 그곳은 2층짜리 신식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직접적인 원인은 안타깝게도 화재사고였으나 이미 증축을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


 내가 아바이마을을 방문했던 날도 어김없이 단천식당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반면 근처에 있는 수많은 순대 집들은 파리만 날리는 상황. 끝없이 늘어선 단천식당의 줄을 보며 ‘여기 줄을 서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밖에 나와 있던 옆 순대 집 아주머니의 외침이 내 귓전을 때렸다. “맛은 다 똑같아요!”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긴 줄을 뒤로한 채 그 아주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나중에 단천식당에 가서도 먹어 봤지만 내가 처음 먹었던 그 집과 큰 차이는 없었다. 아바이마을에 순대 집들이 왜 생기기 시작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들의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그곳에서 재현해냈을 뿐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나는 비슷한 재료를 가지고 요리한다. 집집마다 조금씩은 다를 수 있어도 어느 집은 장사가 잘돼서 2층 건물을 신축하고 어떤 집은 파리만 날려서 망할 정도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그 뒤로 더욱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유명하다는 맛집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꼭 길게 줄을 서야만이 맛있는 곳은 아니다. 근처에 있는 다른 집들도 분명 맛있는 곳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같은 메뉴를 파는 음식점이 모여 있는 골목은 더 그럴 것이다고 생각했다. 왠지 남들과는 다른 미식 여행을 한 것만 같았다.

 

 나만 아는 진리라고 생각했던 그 깨달음이 깨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후 또 한 번 속초로 향했다. 이번엔 지인들 몇 명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얼마 전 아바이마을에서 성공적인 미식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터라 이 깨달음을 모두와 나누고 싶었다. 아바이마을에서의 점심을 제안했다. 1박 2일을 통해 그 유명세가 정점에 달하고 있던 시절이라 모두 가보고 싶어 했다. 어김없이 1박 2일 멤버들이 갔던 바로 그 단천식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난 으쓱하며 괜히 거기 사람 많은 데 갈 필요 없다고 다른 곳에 가도 맛은 똑같다며 그들을 내가 갔던 그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웬일, 이곳도 그새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다. 단천식당만큼은 아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렇지만 당황할 필요 없다. 어차피 아바이마을의 순대 집들은 맛이 다 똑같다. 또 다른 집으로 가면 된다. 어느 집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 순댓국과 모둠 순대를 주문했다. 이윽고 음식이 나왔고, 그제 서야 난 당황했다. 단천식당처럼 고추기름과 파를 넉넉하게 두른 강원도식 순대 국밥이 나와야 하는데 우리가 흔히 서울에서 먹던 들깨 가루와 양념장이 얹어진 신의주식 순대 국밥이 나온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행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난 순대가 목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당황했다.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이 나눈 대화를 듣고 난 후에 그 당황스러움은 당혹스러움으로 변했다.

“맛은 있는데 뭐 서울이랑 별다를 건 없네”

“그러게 말이야, 우리 저녁에는 이승기랑 김씨가 갔던 생선 구이 집에 가서 한잔 할까?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순대국이 강원도식인지 신의주식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1박 2일 멤버들이 생선구이집에도 방문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신의주식 순대국(좌) 강원도식 순대국(우)


 '맛'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또한 맛집의 맛이라는 게 꼭 음식의 맛 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깜짝 놀랄만한 음식을 낸다거나 흔치 않은 미식적 경험을 선사해주는 것도 맛이겠지만 , 누군가에게 맛이란 내가 재밌게 보았던 방송에서 나왔던 바로 그 집을 찾아왔다는 기쁨일 것이다. 또 누군가에겐 소중한 가족과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사랑하는 사람과 식사하며 한껏 로맨틱 해질 수 있는 분위기 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줄을 선다. 나에게도 분명 줄을 서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바이마을에서의 경험은 내가 추구하는 맛이라는 것에 공식이란 없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다수에게 휩쓸리지 않는 고고한 미식가 흉내를 내었지만, 결국 난 경험하지 못했을 뿐이다. 문학 평론가 김현은 ‘마주치거나 부딪치지 않고 이해되는 것은 없다’고 했다.

 여전히 인내심은 없지만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조금 더 앞에 놓아본다. 유명한 맛집에 간다. 그리고 고민한다. 이렇게까지 줄 서서 먹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시간은 많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왔으니 굳이 식사를 빨리 끝내야 할 이유도 없다. 긴 줄 속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여러 가지 ‘맛’에 나의 ‘맛’을 얹어본다.

 어쩌면 줄 서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나도, 아이들이 유달리 신나 보이는 내 앞의 가족도, 행복한 얼굴을 한 내 뒤의 커플도. 잠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자. 그러면 내가 기다린 맛은 어떤 맛인지 마주 보고 경험할 수 있다. 판단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혹시 시간이 아까운 맛이라고 느낀다 해도 그다음은 더 좋을지도 모른다.


 난 미식가 지망생이다. 더 많은 맛을 경험해보기 위해 줄을 선다. 당신은 왜 줄을 서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백종원의 골목식당과 엄마의 식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