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딜 가도 닭튀김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2년 전 인기리에 종영한 <윤식당>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서진 씨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식 닭강정을 신메뉴로 넣을지에 대해 고민하던 다른 출연자들에게 특유의 말투로 선언한다. 그리고 그 한국식 닭튀김은 스페인 소도시 가라치코의 현지인들과 전 세계 여행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순식간에 인기 메뉴로 등극했다. 확신에 찬 그의 선언은 그렇게 증명되었다.
물론 이서진 씨가 세계적인 명문 뉴욕대 경영학과를 나온 재원이긴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모두가 닭튀김을 좋아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데 굳이 뉴욕대학교 졸업장까지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재료가 신발이라 해도 어쩌면 맛있을지 모른다는 인류가 개발한 궁극의 조리법을 이용하며, 그 어떤 종교의 율법에서도 금하지 않는 닭고기를 사용한다. 이거야말로 ‘위아 더 월드’가 아닌가? 물론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치킨은 좀 더 특별하다. 전국에 삼만 육천 개 정도의 치킨집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 수치는 놀랍게도 전 세계에 퍼져있는 맥도널드의 매장 숫자보다 많은 것이다. 그 수많은 치킨집들은 단 한집도 빼놓지 않고 배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고, 평균 일곱 개에서 열 개정도의 치킨 메뉴를 가지고 있다. 한강둔치 어딘가의 돗자리로도 배달이 가능한 대한민국의 치킨 문화는 KFC의 창업자 커넬 샌더스도 경의를 표할 것임에 분명하다.
내 어린 시절 치킨이라면, 새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려 닭다리 끄트머리에 은박지를 둘러 먹는 양념치킨과 손에 기름 잔뜩 묻히며 먹는 바삭한 후라이드 치킨, 가끔 아빠가 퇴근길에 사들고 오셨던 담백하게 기름을 뺀 전기구이 통닭뿐이었다. 아 물론 반반이란 선택지도 존재한다.(쓰고 보니 이것만 해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명확하게 색깔이 다른 세 가지 종류의 치킨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다시 생각해봐도 이건 꽤 어려운 일이 맞다.) 치킨의 종류를 결정했다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다. 그것이 양념치킨이라면 멕시칸 양념통닭집에, 후라이드라면 페리카나에, 전기구이라면 동키 치킨에 전화한다. 그것으로 한 시간 뒤 우리는 모두 행복해질 수 있었다.
하나 지금은 그 정도의 안일한 생각으로 치킨을 주문하려 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배달앱이란 편리한 문명의 이기 덕분에 전단지나 전화번호부를 뒤지는 수고는 덜었지만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수많은 치킨집의 리스트가 손짓 한 번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치킨집 프랜차이즈는 420개 남짓. 지금 배달앱을 켜서 살펴보니 못해도 그중에 백개는 우리 동네에도 존재하고 있나 보다. 동네 치킨집의 목록만 봐도 '상위노출'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영업자들에게 목마른 존재인지 알게 된다.
그 수많은 치킨집들에 질려버린 나는 몇 가지 익숙한 이름들로 그 범위를 좁힌다. 연예인이 광고모델로 등장하는 인기 프랜차이즈 치킨집들. 헉, 세상에. 뭔 치킨이 이렇게 비싼가. 가장 기본적인 후라이드 치킨이 만 팔천 원쯤 한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래 인지도 있는 브랜드는 아무래도 이름값이라는 게 있으니까 비싸겠지. 애써 웃음지은 뒤 스크롤을 좀 더 밑으로 내려본다. 많이 들어보진 못했지만 어디선가 본 적은 있는 것 같은 이름의 치킨집들이 줄을 지어 등장한다. 한 곳을 골라 메뉴판을 살펴본다. 역시 조금 더 저렴하다. 됐다 거의 다 왔다. 이제 치킨 종류만 정하면 되는데 그 마지막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인다. 치킨 종류만 십여 가지, 세트와 각종 토핑들의 경우의 수까지 합하면 못해도 서른 가지 이상의 선택지가 있다. 세 종류의 치킨 사이에서 고뇌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잠시 떠올려 보았다. 그래 세상은 이렇게나 발전했다. 너무나도 넓어진 선택의 폭에 열광하며 조용히 종료 버튼을 누른다. 난 어쩌면 21세기를 살아갈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휩싸인다. 백개의 치킨집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수백 가지의 치킨 메뉴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던 나의 뇌는 급기야 파업을 선언하고 허기짐의 바통을 몸에게 넘겼다. 만사가 귀찮아서 시도한 치킨 주문은 이쯤 되면 차라리 몸을 움직이는 게 덜 피곤하겠다는 결론을 남긴 채 실패했다. 어쩌면 찬장에 남은 라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보다 많은 것들이 편해졌다. 하지만 가끔은 그리울 때가 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디자인에 견고하고 두꺼운 상자 재질, 콜라와 치킨무까지 넣어서 오는 포장보단,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종이로 만든 상자에 대충 아무렇게나 고무줄로 휘휘 둘러맨 포장이. 흘러내린 기름을 남김없이 빨아들이는 기름종이보단 북 찢어서 닭다리에 손잡이를 만들 수 있는 쿠킹 호일이. 개성 넘치고 창의적인 수많은 치킨 메뉴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보단 세 가지 남짓한 메뉴에서 고민했던 그때가. 물론 일주일만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불편해서 못살겠다고 징징거릴 것이 분명하지만, 그 불편함이 불편하지 않게 생각날 때가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됨에 지쳐버릴 때가 있다.
‘큐레이션’이란 단어는 생각보다 최근에 만들어진 신조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작품을 기획하고 설명하는 ‘큐레이터’에서 따온 말이다. 그들은 시기와 예산 등을 고려해 전시의 테마를 만들고, 그 테마에 맞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한 곳에서 볼 수 있게 모아둔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직종이다. 당연하겠지만 일반인이 실생활에서 큐레이터의 도움을 받을 일은 많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큐레이션의 도움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혹은 너무 할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느껴지는 피로감은 배부른 소리라고 깎아내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5개밖에 되지 않던 티브이 채널은 케이블 티브이와 IP티브이를 거쳐 수백 개로 늘어났다. 그것도 모자라 유튜브와 넷플릭스까지 볼 수 있는 지금의 티브이들은 우리에게 수백만 가지의 선택지를 제공한다. 아는 사람들만 찾아갈 수 있었던 각 지역의 숨은 맛집들은 이제 누가 더 부지런하고 오래 줄 설 수 있는 인내심을 보유했는가에 따라 그 자리를 내어 준다. 몰라서 못 찾아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젠 그 수많은 맛집들 중에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한다. 물론 그중에서도 ‘큐레이션’이 가장 필요한 분야는 치킨을 주문할 때다. 수백 개의 치킨 브랜드와 수많은 메뉴들 사이에서 나를 구원해줄 그 무엇이 간절히 필요하다.
치킨을 주문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