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계획했던 초등 저학년 대상 글쓰기 수업은 백지를 나눠주고 아이들의 생각을 마음껏 쓰는 수업을 꿈꿨다. 주제를 설명한 후, 생각하는 시간을 주고, 말하듯 글 쓰는 방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첫 수업을 앞두고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이들 수준도 모르고, 반 인원수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라 안전하게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워크북을 만들기로 했다. '5분 만에 끝났다고 하면 어쩌지? 글쓰기 싫다고 단어 하나만 딸랑 쓰면 어쩌지?'
다수를 대상으로 수업을 할 땐,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도록 다양한 변수를 생각해야 한다. 간단히 답을 쓰는 방식이라 처음에 종이를 받았을 땐 어렵게 느껴지지 않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답이 쉽게 나오는 질문은 아이다.
어른들 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 글을 그대로 올립니다)
사슴벌레 혼자소 손 위에 올리기
마리오 밥주기
무거운거 들 때, 아이스티 만들때
설거지
태권도품새
칼, 위험도구, 빼고
누워서 떡먹기
핸드폰 충전시키기
씻을수잇어요, 사워, 양치
버스 타기, 자전거 타기, 길가기, 헌자 학교 가기, 학교혼자갈때
아이들은 어른들 도움 없이 스스로 해냈을 때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은 아이가 자존감이 높다. 발표를 잘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친구가 많은 아이가 자존감이 높을 거라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늘 공부를 잘하거나, 늘 발표를 잘하거나, 늘 친구가 많지않다. 친구랑 다투기도 하고, 국어는 잘하는데 수학을 못할 수 있으며, 답을 틀려 창피한 경험도 한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 세계에선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잘하는 아이가 빛난다. 자존감 높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은 자신감을 지닌 아이로 키우면 된다.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어른 도움 없이도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살펴보니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과 이동에 관한 글이었다.(초등 저학년 기준) 혼자 씻고, 양치하고, 아이스티를 만들거나 무거운 걸 들 때, 그리고 혼자 학교가는 자신의 모습을 멋지다고 생각한다.
사슴벌레 혼자서 손 위에 올리기'를 읽곤 웃음이 났다.태권도 품새 딴 것이 자랑스러운 아이들은가장 좋아하는 것, 행복할 때, 혼자 할 수 있는 것의 모든 답을'태권도'라고 썼다. 아이들 글에 동물이 많이 등장했다. 좋아하는 것과 행복할 때의 질문에 여러 동물이 등장했다. 다움주엔 동물에 관한 글쓰기를 해야겠다.
"선생님, 나 이거 혼자 할 수 있어요." 너도 나도 자랑하며 떠들어댄다. 시끄럽지만 떠드는 소리가 듣기 좋아 실컷 떠들게 놔뒀다. 소리가 모여 글이 되고, 글이 모이면 이야기가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