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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미모미 MomiMomi May 26. 2020

시애틀과 해물파전

팬케이크면 어떻고 부침개면 어떤가?


화장을 곱게 한 여인이 커다란 식칼과 고등어를 엑스자로 들고 있는 썸네일이 눈에 들어왔다. 걸쭉한 한국식 영어 발음을 구사하는 뉴욕 거주 한인 유튜버의 한식 요리 채널이었다. 한참을 넋 놓고 보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양 옆에 앉아서 ‘와, 맛있겠다!’를 외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유튜버의 영어 발음이 신기하다며 다가와서는 화면에 비친 먹음직스러운 요리에 푹 빠져버렸다. 저녁 9시가 넘어가는데 요리 채널에서 김치 지지미를 하고 있었다. 지지미를 좋아하는 큰 아이가 침을 꼴깍 삼켜가며 지금 당장 부침개가 먹고 싶다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유튜버는 잘 익은 김장 김치와 약간의 쪽파를 쫑쫑 썰어 밀가루에 갠 후 넉넉한 기름에 바삭바삭 부쳐냈다. 지글지글 노릇노릇 김치전이 익어가는 걸 보고 있자니 배고픔과 함께 유학시절의 추억이 밀려왔다.


10년간의 대학병원 약사로 근무하며 저축한 돈을 들고 시애틀로 유학을 떠났었다. 대학생 시절부터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유학이었는데, 직장생활 10년이라는 세월 후에 겨우 유학 길에 오를 수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기에 생활비를 줄이려고 학교 기숙사에서 나와 좀 더 저렴한 셰어하우스로 집을 옮겼다.

내가 머물렀던 대학 근처의 셰어 하우스는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저렴한 임대 하우스였다. 미국인 발룬티어가 무상으로 제공하고, 국제학생기구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유학생들은 유틸리티와 식비 정도의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매주 국제학생기구에서 주최하는 크리스천 모임에 80인분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청소 의무가 있었다.  

하우스에 함께 지낸 유학생들은 미국인을 포함하여 멕시코, 중국, 부탄, 대만, 일본 등 다국적이었다. 모임의 저녁식사 준비와 함께 또 하나의 룰이 있었는데 주 4회 이상 저녁을 함께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우스메이트들이 돌아가면서 저녁을 준비했다. 매주 주최하는 모임에서 80인분의 식사와 하우스메이트들의 저녁을 돌아가면서 준비하다 보니 어느덧 나의 요리실력은 언어능력 향상을 추월했다.

주로 준비했던 단골 메뉴로는 불고기, 잡채, 김밥, 카레 등 한꺼번에 많은 인원에게 쉽게 제공할 수 있는 메뉴들이었다. 한국음식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음식들의 요리법을 배웠는데 각 나라마다 먹고 난 후 기억에 남는 고유의 느낌이 있었다.


일본음식은 깔끔하면서 달근하고, 뭐든지 기름에 볶아내는 중국음식은 적당한 포만감으로 행복하고, 강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부탄 음식은 뒤돌아서면 또 먹고 싶은 강한 중독성을 남겼다. 함께 지냈던 친구들을 떠올릴 때면 친구의 나라 음식이 세트메뉴처럼 따라온다.  


미국 서북부에 위치한 시애틀은 스타벅스 커피만큼이나 비가 자주 오는 날씨로 유명하다. 처음 시애틀에 도착했을 때가 여름 한창이었는데, 현지인들이 다가오는 가을부터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처음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뜨거운 여름이 끝나자 거의 매일 비가 오는 우기가 시작되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는 가을, 겨울을 겪어보니 정말이지 없던 우울증도 생길 것 같았다.



유학생들이 북적대는 셰어하우스에 들어온 것은 정말이지 잘한 선택이었다. 친구 없이 홀로 지냈다면 비 오는 날씨만큼이나 축 쳐진 유학생활을 했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제일 좋은 방법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음식은 단순히 재료가 혼합된 결과물이 아니다.


음식을 준비해 본 사람은 안다. 신선한 재료를 구입하고, 재료를 손질하고, 때에 맞게 혼합하고, 적절한 온도로 음식을 제공한다는 것이 보통의 정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구나 요리를 하면서 음식을 먹을 사람을 상상하며 정성과 함께 사랑하는 마음을 한껏 담게 된다. 이 정성이 먹는 이의 입과 마음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누군가와 사이가 소원해졌다면 음식을 정성껏 마련하여 대접해 보라.


음식은 백 마디 말보다
진심을 전달하는 힘이 아주 강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오후에 하교를 한 친구들이 거실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피아노나 기타를 연주하기도 하고 스탠드를 켜놓고 독서를 하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이 그날따라 날씨 때문인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우스메이트들은 내가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도움을 주었었다.


차가 없던 시절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가는데 라이딩을 해준 친구, 운전면허 시험을 위해 주행 연습을 도와준 친구, 논문의 틀린 문법을 교정해 준 친구, 약사고시 시험을 치르기 위해 먼 도시까지 운전을 도와주고 도시락을 준비해준 친구. 하우스의 친구들은 내가 필요할 때마다 도움의 손을 내어주는 천사들이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음식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트레이더스 조에서 구입한 시푸드 믹스 (해물 모둠)와 그린 어니언(실파)을 계란과 부침가루에 개어서 해물파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커다란 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부침개 반죽을 고르고 얇게 폈다. 온 집안이 고소한 기름 향기로 가득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친구들은 각자의 방으로 가는 대신 전을 부치고 있는 부엌으로 달려와 ‘Smell’s good’을 외쳤다. 약간의 발사믹과 간장, 그리고 깨를 갈아 소스도 함께 준비했다.


옹기종기 동그랗게 거실 바닥에 앉아 간식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부지런히 해물파전을 부쳤다. 서툰 젓가락질로 바삭하게 구워진 파전을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 가득 배가 불러왔다. 아이들은 엄지를 치켜들며 너무나 맛나게 부침개를 먹어주었다.


“Korean seafood pancake is fantastic!”


한국에서도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가 부침개를 부쳐주었었다. 비가 오면 어디선가 향긋한 기름 냄새가 새어 나오며 부침개가 연상되는 것은 자동이었다.


비 오는 시애틀과 부침개는 찰떡궁합이었다.  시푸드 팬케이크를 계속 부쳐내도 없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한 10판 넘게 부쳤나? 그제야 친구들은 동그래진 매를 쓰다듬으며 행복해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10년이 넘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가끔 연락을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친구들은 아직도 나의 시푸드 팬케이크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요리법이 간단해서 레시피를 알려주었더니 자주 해 먹는다고 했다. 한국 마켓 호돌이 슈퍼에서 가끔 김치도 사 와서 김치 팬케이크도 해 먹는단다. 작은 음식 하나가 아직까지도 친구들과 나를 연결시켜 주고 있었다.


친구들이 팬케이크라도 부를 때마다,

“Pancake is buchimgae in Korean.”이라고 한국 이름도 알려주었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팬케이크라 부른다.


부침개면 어떻고, 지짐이면 어떻고, 팬케이크면 어떤가?


음식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추억을 나누고, 시간을 나눈 친구들은 멀리 떨어져 있고 만난 지 수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세월이 지났어도 음식으로 함께 나누었던  추억과 행복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도전의식을 품고 건너갔던 타국 생활에는 좋은 추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위와 미국 약사면허를 함께 준비하면서 수많은 나의 한계들과 지독히도 자주 마주해야 했다.


지나 놓고 보면 다 추억이 되는 건지

미국 유학생활을 떠올릴 때면 어둡고 힘든 기억보다

좋았던 시간들이 가득하다. 그 한 켠엔 친구들과 함께 했던 김장김치, 김밥, 해물파전 등 음식들을 빼놓을 수 없다.


친구들이 코리아 하면 고소한 해물파전을 부쳐대던 나를 떠올리듯이 음식이 곧 사람일 수도, 나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음식은 때때로 음식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나와 내 주변이 힘들어 보일 때 진실된 마음이라는 재료를 듬뿍 넣은 음식을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 부족한 삶의 일부를 채워주고, 식어버린 마음을 덥혀주는 따스한 음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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