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생 31
오락실 집 막내아들 이야기 (3)
그렇게 내 생일이 다가왔다. 나는 끝끝내 단 한 사람을 찾아냈다. 내 생일에 초대할 그 영광의 주인공을 말이다. 과연 어떤 사람이 어떤 연유로 그 유일한 자리에 앉게 될 것인지 궁금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주인공이야말로 지극히 단순한 이유로 말미암아 마지막 한 명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었다. 내 생일 불과 며칠 전에 쉬는 시간에 나는 학급에서 다른 힘쎈 친구 한 명과 사소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키만 멀대같이 뒤에서 두세번째로 컸지 새가슴에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멸치마냥 삐쩍 마른 나는 친구들과 몸싸움은커녕 감히 대들어 보지 못했던 겁쟁이 중에 상겁쟁이였다. 그래서 주먹 대신 입으로만 열심히 싸우는 축에 속했다. 그 날도 그 힘쎈 친구가 힘없는 나에게 얼토당토 않는 시비를 먼저 걸어왔다. 교실 뒤에 있는 물통에서 물 한 잔 떠오라는 기분나쁜 명령과 함께. 힘으로는 턱도 없는 나로서는 마치 시종마냥 물 한 잔 떠다가 그 친구에게 가져다만 주면 될 것을... 나는 그게 죽기보다도 더 싫었나 보다. 싸움도 못하는 주제에 자존심만 더럽게 쎘는지도 모른다. 암튼 그 힘쎈 친구를 향해 완강히 저항의 몸부림을 쳐 보았다. 그러나 내게 돌아온 것은, 그 힘쎈 친구의 울그락불그락 잔뜩 찌푸려진 얼굴 표정과 함께 위협적인 태도뿐이었다. 좋은 말로 할 때 가져와라. 나는 그게 결코 "좋은 말" 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거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싫다고 또다시 소리치며 그 힘쎈 친구 앞에 당당히 맞서고야 말았다. 그 순간, 얼굴에서 갑자기 꽝 하는 묵직한 충격이 느껴지면서 미간과 코가 동시에 먹먹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뿔싸 한 대 맞았구나. 순식간에 그 힘쎈 친구가 그 커다란 주먹으로 내 얼굴을 정통으로 쳐버렸던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뒤로 쓰러져 버렸고, 그동안 싸움구경에 여념이 없던 친구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만을 어렴풋이 바라보며 잠시 기억을 잃었다. 아무런 조치도 없이 교실 바닥에 덩그러니 누워있다가 몇 분 뒤 다시금 깨어났을 때 모든 상황이 종료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힘쎈 친구 녀석이 교실 한켠 바닥에 쭈글스럽게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웬걸 그 녀석의 오른쪽은 누가 봐도 뚜렷하게 눈탱이 밤탱이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분명히 때린 적은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알고 보니 옆집에 사는 내 골목 친구 중 한 아이가 같은 학급이었는데, 일방적으로 맞아 기절한 나를 보고서는 확 열이 받아서 그 힘쎈 친구 녀석을 연신 두들겨 패주었단다. 기절해 누워있는 나 대신에. 돈이 없어서 눈깔사탕 한번 사 준 적 없는데... 맨날 공벌레나 지렁이나 가지고 놀고 북천에 귀뚜라미, 여치, 방아깨비, 메뚜기 잡으러 다닌 게 전부인데... 그 녀석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나를 괴롭히는 악의 무리를 응징할 힘조차 없던 나 대신, 그 힘쎈 친구를 무찌르고 심판해 준 그 친구에게 무언가 보답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생일파티 초대였다.
그 고마운 친구에게 내 생일파티에 초대하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 친구는 그다지 반가워하거나 기뻐하지는 않는 거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국민학교 학생의 생일파티라고 해 봤자 그 수준이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사실 어떤 면에서는 생일파티 혹은 생일잔치라고 하기에는 뭔가 미흡하다 할 정도로 조촐하고 심지어 초라하기까지 한 적도 많았다. 몇몇 부잣집 아들 딸만 제외하고. 그 친구 역시 우리집 바로 근처 골목에 살던 아이라서 이미 우리집 살림형편쯤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 생일파티에 초대된 것이 아주아주 기쁘고 감격스럽지는 절대 않았으리라. 아니 일말의 기대감조차 없는 듯도 보였다. 하긴 나도 나의 이번 생일파티가 과연 어떤 식으로 열릴지 기대하는 마음이 단 1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그 친구에게 내 생일초대를 함과 동시에 내 생일이 언제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줬다. 그리고 생일선물을 사 올 필요는 없다고 얘기해줬다. 그 친구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뭐 우리 사이에 굳이 생일선물 따위를 주고받는 것은 우리 둘만의 순수한 우정을 자못 퇴색시키기라도 한다는 반응 그 자체였다. 뭐 상관없었다. 나도 지난번 그 친구의 생일날 초대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 친구 생일을 선물 하나 없이 그냥 모른 채 넘겨버렸으니 말이다. 그리고는... 나의 생일이 다가올수록 나에게도 그 친구에게도 조금씩 조금씩 내 생일파티에 기대감이 스믈스믈 생겨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