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생 30
오락실 집 막내아들 이야기 (2)
가만히 회상해 보자면... 그 시절 국민학교 학생의 생일이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의미있고 중요한 날이었다. 요즘처럼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햄버거 가게, 혹은 키즈카페 같은 걸 통째로 빌려서 학급 친구 전부를 불러다가 성대하게 치뤄지는 그런 초대형 생일파티를 할 수는 없었지만... 평상시 눈여겨 보던 친구들만 이미 오래 전에 잘 추려내고, 생일로부터 한 1주일쯤 전이 되면 그 친구들한테만 살짝 나의 생일이 언제인지 알려주는 식의 자못 비밀스러운 초대가 이뤄지곤 했었다. 그 몇 안 되는 초대에 포함되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과 함께, 그 친구에게 내가 둘도 없는 친구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는 그런 의미였는지도 몰랐던 거 같았다. 보통은 가장 친한 친구, 평소에 즐겨 같이 놀던 친구들이 선택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대개 어머니들은 그 시절 국민학교 학생들의 어머니들은 그런 친한 노는 친구들보다는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이 생일잔치에 참석하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하셨던 거 같았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하는 시조까지 있지 않는가. 예로부터 우리 한민족은 그렇게도 친구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민족이었다. 정작 자신들의 아들 딸은 모범적이고 신실한 학생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친구들만큼은 남들에게 칭송받는 근면성실 태도양호 착하고 모범적이고 우등한 성적의 누가 봐도 반듯한 그런 아이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어쨌든 그렇게 생일초대를 받게 되면 아니 그 친구에게 선택된 자가 되게 되면, 나는 또다른 고민에 빠지곤 했다. 맨손으로 생일파티에 참석할 수는 없었으니까. 뭐라도 들고 가야하는데, 너무 싼 건 손이 부끄러울테고 너무 비싼 건 돈이 부족해서 아예 꿈도 못 꾸고. 장난감 사기에는 어림도 없는 돈 몇 푼을 들고 한참을 고민하곤 했었다. 결국 지지리 공부하기 싫어하는 그 친구 녀석을 위해 나는 저렴한 공책 몇 권을 손에 쥐고 생일파티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생뚱맞은 공책 선물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연신 나를 흘겨보는 그 친구를 못 본 체하며, 나는 생일파티 내내 어색하게 앉아있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1986년의 초여름 국민학교 3학년 열번째 내 생일이 다가왔다. 나는 어떤 식으로 나의 생일을 지나갈른지 살짝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해 어머니와 상의를 하였는데,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도 일하느라 바쁘니, 다른 여느 친구들처럼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과 다과들을 한상 가득 차려놓고 성대하게 생일파티를 할 형편이 도저히 안된다고. 이미 그럴 것이라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생일파티 없이 대강 건너뛰시려는 누추한 우리집 가정형편을... 알면서도 슬펐고, 슬프면서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지나가기에는 너무도 아쉬웠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다시 어머니와 마주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와의 마라톤 협상 끝에 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제일 친한 친구 딱 한 명만 초대하라고. 딱 한 명이라... 그 한 명을 데리고 대체 무슨 생일 파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약간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나마 한 명만이라도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열어주신다 하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그 유일한 한 명을 선정하기 위한 실로 고통스러운 고뇌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누가 좋을까. 단 한 명뿐인데 속으로만 짝사랑하던 학급 친구 그 여자 아이를 초대한다면, 온 동네 소문나서 학교 다니기 힘들텐데... 그럴수도 없고. 며칠 밤낮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는 조금씩 조금씩 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표군은 줄잡아 학급 친구 50여명에다가 골목 친구들 10여명, 다른 반 친구들 20여명 등등등 도합 80여명은 족히 될 듯 많은 인원이었다. 특히 지난번 자신의 생일날 기꺼이 나를 초대해 주었던 친구들 몇 명이 간추려졌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집안 형편이 우리집보다 잘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다시 제외되었다. 왜냐하면 자칫 올해 내 생일선물이라도 받을라 치면, 내년에는 반드시 그보다 더 좋은 선물로 되갚아줘야 할 의무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 괜히 생일선물 한번 받으려다가 막심한 손해로 끝날 확률이 컸다. 생일파티에 초대할 그 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무조건 한 사람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올해도 내 생일은 그저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365일 중에서 흔해 빠진 여느 날들처럼 그런 평범한 어느 날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