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생 29
오락실 집 막내아들 이야기 (1)
국민학교 시절에는 워낙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개발도상국 수준이어서 그런지... 놀만한 곳이 없었다. 아니 놀러다닐만한 곳이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리라. 탈선을 해봤자 기껏해야 롤러스케이트장인데, 그나마 합법적으로 암묵적인 용인이 되는 테두리 안에 있는 놀이터였다. 그래서 나는 그리고 나의 국민학교 선후배들은 학교 앞 문방구 앞에 있는 달랑 1세트의 쪼그려 앉는 소형 오락기를 선호했다. 10원짜리 2개에 한 판이었던가. 많아야 2명이 2인용을 하는 게 최상의 옵션이라서, 내가 게임하고 싶더라도 꼭 친한 친구 한 명을 섭외해야만 했다. 하루 50원 많으면 100원의 용돈을 매일 수령하던 기초용돈수급자였던 나에게는, 20원짜리 한 판의 오락게임은 지극히 호화옵션의 놀이요 사치였다. 하지만 어느날 나에게는 도저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대반전의 날이 문득 다가왔다.
지게지기 싫어서 무단 가출 및 상경 아니 부산으로 내려왔던 아버지... 가진 기술이라고는 오토바이 타는 거 하나이시던 아버지가 자전거로 쌀 배달도 하시고 아이스크림 트럭 배달도 하시고 그야말로 수십차례 직업을 바꾸셨다. 아마 아버지 본인도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업종에 종사하셨는지 일일히 다 기억하지 못하시리라. 암튼 그러던 중에, 누가 아이디어를 주신건지 알 길이 없지만 갑자기 새로이 가게를 차리고 선언하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국민학교 3학년, 반에서는 나름 상위권을 유지하며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셨다. 시내 한복판에 크고 작은 여러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자동찻길 골목으로 가시더니 샷다가 내려진 한 가게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그 샷다를 단번에 올리시고 내게 말하셨다. "여기가 우리 가게다. 며칠 있으면 개업식도 할 꺼고." 오락실이었다. 작지만 대략 30여 대의 중형 오락기를 갖춘 전자오락실이었다. 엉 이게 우리 가게라고. 사실 나는 그 때까지 학교 앞 문방구 앞 소형 오락기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제대로 갖춰진 전자오락실에는 간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왜냐하면 그 당시 학교에서는 공식적으로 전자오락실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담임선생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전자오락은 백해무익하다. 오락실은 학교 빠져먹는 불량배들이나 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오락실에 가는 학생은 나쁜 학생이다" 는 식의 3단 논법을 사용하며 오락실 출입을 불법화시키고 계셨다. 나의 국민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국민학교 선생님들까지 거의 매일마다 순찰당번을 짜서 학교 마치고나면 시내 구석구석 순찰을 돌기도 하셨는데, 그 때 오락실에 앉아 있다가 선생님께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느 학교/몇 학년/몇 반 누구인지 그 학생의 신상명세를 소상히 알아낸 뒤 해당 학교로 반드시 연락이 갔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선생님께 오락실에 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싸게 혼이 나고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맞고 급기야 반성문까지 써야하는 심히 골치아픈 상황으로 전개되곤 하였다. 그러니 집-학교-집-학교를 일년 내내 반복하던 내가 무슨 용기가 있어서 오락실에 갈 수가 있었겠는가. 무엇보다도 선생님께 야단맞기에 앞서 어머니한테 혼나는 게 두려워서라도 나는 전혀 엄두를 내지 못했던 거 같다. 내심 오락실에 도대체 얼마나 재미난 오락들이 많길래 친구들이 야단맞을 것까지 각오하고 거기로 가는지가 궁금하기도 했었던 거 같다. 아 그런데 그렇게도 한번쯤 가 보고 싶었던 전자오락실이 이제는 우리 가게라고...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때 이상한 희열이 느껴졌다. 개업을 앞두고 샷다가 내려진 조용한 오락실 내부. 꺼져있는 오락기의 전원을 켜면... 컴퓨터 부팅처럼 잠시 뒤에 오락기 화면이 켜지고 "INSERT COIN" 이라는 문구가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코인 투입구 소위 슬롯에 동전을 집어넣을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 ㅎㅎㅎ 국민학교 때는 영어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온통 영어로만 도배된 오락기 화면을 바라보면, 도무지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본능적으로 깜빡이는 "INSERT COIN" 을 보고서는 아. 돈 집어넣으라는가 보다 하고 금새 그 뜻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 날 이제는 우리 가게인 전자오락실을 처음 간 그 날, 샷다가 내려진 조용한 그 가게 안에서 나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몇 시간이고 혼자서 그 30여 대의 오락기들을 하나하나 전원을 켜가며 손수 경험하였다. 눈이 똥그래져서 그리고 진짜 넋이 나간 눈빛으로 오락기를 바라보던 나를 보신 아버지가, 그날만큼은 막내 아들 녀석 원없이 오락 실컷 해 보라는 생각을 하셨던 게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표 무제한 오락게임을 정말 양손가락 전부가 뻐근해져서 더이상 오락기 스틱과 버튼을 누를 수 없을만큼 완전히 지칠 때까지 계속 할 수가 있었다. 갤러그, 테트리스, 뽀글뽀글, 제비우스, 1942, 올림픽, 더블 드래곤, 슈퍼 마리오, 벽돌깨기, 너구리, 스트리트 파이터, 너클죠, 철권 등등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재밌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새는지 모른다고 했던가. 그날 이제 저녁 먹으러 집에 가자는 아버지의 말이 들릴 때까지 나는 오락기 앞 의자로부터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왼손에 쥐어진 오락기 스틱으로부터 도저히 헤어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 다음날이었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해서 교실로 들어온 담임선생님이 다짜고짜 조회시간부터 화를 내시기 시작하셨다. 어제 오락실 간 사람 손들어. 두어명의 친구들이 쭈뻣쭈뼛 마지못해 손을 들었다. 더 없어, 빨리 손 안 들어. 나도 모르게 오른손이 올라갔다. 학급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선생님도 친구들만큼 많이 놀라고 당황하신 듯 싶었다. 쟤는 모범생인데... 오락실에 갔을리가 없는데... 선생님이 그런 나를 일으켜 세우시더니만 어김없이 물으셨다. 너는 어떻게 된 거야, 왜 오락실에 갔어. 내가 과연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도대체 내가 왜 생전에 한번 가본 적도 없던 오락실에 가게 되었는지, 모든 학우들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었다. 저... 저... 우리집이 오락실 가게인데요. 선생님은 소스라치게 놀라신 거 같았다. 하필이면 이 모범생 녀석의 집이 오락실일 게 뭐람. 친구들도 와 하고 짧은 감탄을 하였다. 선생님이 들으실세라 나즈막히 서로 웅성거리기도 했다. 와 부럽다. 나는 친구들이 난생 처음으로 나를 두려워하는 그 목소리들을 듣고야 말았다. 그렇게 나는 비로소 만천하에 내가 드디어 "오락실 집 막내아들" 이 되었음을 선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