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생 27
내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9)
어느날이었다. 종례시간에 그 속물 담임선생님이 도무지 한번에 금방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하셨다. 오늘 오후에 학교로 생명OO협회에서 전화가 왔는데, 글짓기대회 전국 2등이 우리반에서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사람이 누군지는 오늘 말해 줄 수 없다고 하셨다. 이게 뭔 얘기야 그냥 말씀해 주시면 될 것을.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유의 능글능글 기름진 표정으로 썩은 웃음을 흘리며 담임선생님은 속절없이 종례를 마치셨다. 안 그래도 가난한 나는 거들떠도 안 보시던 담임선생님이라서 감히 따로 찾아가서 물어보기도 쫌 그랬다. 학교 마치고 집에 가면서 친구들은 당연히 교내 글짓기왕 네가 상 받는 거 아니냐고 설레발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에 담임선생님이 못 사는 내 글을 일부러 걸러버리고, 집 잘 살고 어머니도 전교 어머니회 임원인 OOO이의 글을 우리 반 대표로 올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잘 사는 집 아이들만 유독 챙겨주곤 하던 속물의 결정체 그 담임선생님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한 상황이었다. 어 그러면 정말 안되는데 어쩌지. 이미 글짓기대회 마감을 넘어서서 서울에서 전화까지 학교로 왔다는 시점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건 없었으리라. 국민학교 졸업 전 내가 주어진 어쩌면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는데... 그날 밤도 한숨 이루지 못하였다. 과연 누가 전국 2등이 되었을까.
오늘도 담임선생님은 능글맞은 웃음으로 조회를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드디어 그 결과를 발표하셨다. 잘 사는 집 자손 OOO이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시는가 싶더니, 정말 안 기쁜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부르셨다. OOO 네가 바로 그 전국 2등이다. 마지못해 아이들에게 박수를 유도하는 담임선생님의 그 표정에서는 그 어떠한 기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전국 2등을 해 본들 담임선생님 본인한테는 아무런 이득이 없을테니까. 어쨌든 1년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물이 전국 2등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대상인 1등은 "재무부장관상" 딱 한 명이었고 2등인 금상은 3명이나 되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공동 2등인 셈이었다. 생명OO협회 주관, 소년OO일보 후원이었나 암튼 그런 꽤나 크고 이름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글짓기대회 입상이라... 며칠 후 어린이신문에 그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학교가 온통 난리가 또 났다. 2등인 나 이외에도 5학년 학생 1명이 3등, 5명인가 10명인가 하는 많은 인원들이 "입선" 을 하면서 급기야 나의 국민학교가 최우수단체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었다. 덕분에 특별 문예반 지도선생님이기도 하셨던 김O희 선생님은 최우수지도교사상을 받기까지 하셨다. 나의 국민학교가 그 글짓기대회를 휩쓸게 되면서, 명실상부한 전통의 명문 국민학교로서 전국에 그 이름을 떨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로 인해 나중에 국민학교 졸업식 때는 학교를 빛낸 인물이라고 해서 "공로상" 까지 받게 되었다. 음 당연히 받을만한 업적이긴 하지 ㅋㅋㅋ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고... 생명OO협회에서 시상식을 위해서 2박 3일의 일정을 준비해서 집으로 연락이 왔다. 학생과 함께 동반하는 보호자 1명의 숙식비와 교통비 등 일체를 지원할테니 시상식에 꼭 참석해 주십사 하는 당부와 함께. 난생 처음 서울땅을 밟은 나는 졸지에 서울 구경도 하게 되었고, 시상식이 열린 "63빌딩 대회의장" 에서 얼떨결에 KOS 1TV 카메라에 잡혀 오후 5시 뉴스 한귀퉁이에 출연하기까지 했다. 물론 1등한 코흘리개 4학년 여학생만 인터뷰를 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텔레비에 나온 게 어딘가. 시상식 뒤에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노는 것도 공짜. 태어나서 처음으로 밀크쉐이크도 먹어보고. 3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좋기만 하던 즐겁고도 뿌듯한 추억들이었다. 그 추억들을 머금고 중학교,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까지 신춘문예를 비롯한 교내외 백일장들을 두루두루 섭렵하고 다녔다. 안타깝게도 신춘문예만큼은 전혀 소득이 없긴 했지만서도... 그리고 세월이 상당히 지나간 2024년 08월 20일 화요일 오늘 이 아침에도 이렇게 태블릿을 벗삼아 나의 녹슬지 않은 글솜씨를 한껏 뽐내보려 애를 쓰고 있다. 그 옛날의 찬란한 영광을 다시 되찾기까지, 이제는 고작 1년이 아니라 적어도 10년은 더 노력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