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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생 26

내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8)

by 특급썰렁이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를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편지를 포함해서 7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다. 복사를 해도 좋습니다. 혹 미신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영국에서 HGXWCH이라는 사람은 1930년에 이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비서에게 복사해서 보내라고 했습니다. 며칠 뒤에 복권이 당첨되어 20억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이 편지를 받았으나 96시간 이내 자신의 손에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그는 곧 사직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7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다시 좋은 직장을 얻었습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이 편지를 받았지만 그냥 버렸습니다. 결국 9일 후 그는 암살당했습니다. 기억해 주세요. 이 편지를 보내면 7년의 행운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3년의 불행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버리거나 낙서를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7통입니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행운이 깃들 것입니다. 힘들겠지만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7년의 행운을 빌면서...]


복사도 쉽지 않던 시절... 7통의 편지를 일일히 베껴쓰다 못해 복사용 까만 먹지에 꾹꾹 눌러 쓴 적도 있다. 7통 다 안 보내면 재수가 없을까 해서 더 열심히 옮겨 적었나 보다. 다 쓴 7통은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동네 골목친구들 중에서 특별히 선별해야만 했다. 그리고 들킬세라 그 친구들 대문의 우편함에 소리 소문 없이 조심스레 전달이 되어 그 임무를 다하였다. 리고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우리집에 도착한 또 다른 누군가의 "행운의 편지" 를 받아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였다. 그렇게 유행의 열풍은 도돌이표처럼 한동안 나와 내 친구들의 삶을 두세번 이상 반복적으로 휘감고 나서야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그 운명의 글짓기대회를 발표할 때가 되었다. 1년이나 기다리고 준비해 놓고는 막상 글짓기대회 요강이 발표되고 또 올해도 어김없이 단체제출을 위한 학교 자체 마감날짜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급기야 마감전날 저녁부터 원고지에 바로 써내려가기 시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 두칸뿐인 좁은 집 안에서 늦은 시각 책상 스탠드불을 켜놓고 글쓴답시고 부스럭거리는 막내 아들의 모습을 어머니가 예뻐하셨을리 만무하다. 전깃세 나가니깐 빨리 끝내고 자라는 둥 낮에는 뭐하고 이제와서 난리냐는 둥 휘황찬란한 잔소리들이 뒷통수를 따갑게 때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도 멈춰서도 안 되었다. 이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무려 1년이나 기다렸고, 국민학교는 올해가 마지막이라서 더이상의 기회 따위는 앞으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는 어느 새벽 무렵에야 겨겨우 탈고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어 제법이네. 내가 읽어봐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거 같다. 학교제출 마감날 약간의 기대어린 눈초리의 친구들을 뒤로 한 채 당당하게 교탁으로 나아갔다. 앞서 "나의 일생 4" 에서 잠깐 언급했던 속물 6학년 담임선생님은 귀찮은 듯 내 원고지를 다른 친구들 원고지 더미 위에 집어던지셨다. 설마 내 것만 빼고 제출 안 하는 건 아니겠지. 제출만 되면 입상은 때어놓은 당상인데... 그 뒤로 한참의 시간이 지나갔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마음 또한 새하얗게 타들어갔다. 이제나 저제나 글짓기대회 결과가 오려나 기다려지는 마음은 대한민국 국민학생들 그 누구보다도 더 강렬했다고 자신할 만한 했다. 이번에도 작년처럼 쾌나 많은 학생들이 응모를 한 모양이었다. 특히 작년에 단체상을 받은 나의 국민학교에도 때아닌 글짓기대회 열풍이 불어서, 각 반에서 내노라 하는 친구들 소위 글깨나 쓴다는 친구들에게 국어선생님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지도까지 하신 모양새였다. 다른 학교 학생들하고 경쟁하기도 버거운데 교내에서도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얼핏 들리기로는, 학교에서 사전에 마감된 글들을 선생님들이 일일히 읽어봐서 내용이 괜찮은 글들만 선별해서 생명OO협회에 제출한다는 소문도 있긴 했다. 내부의 경쟁자라니. 교내에서 걸러지면 본 게임에 가 보기도 전에 예선 탈락이다, 아뿔싸 진짜 그러면 대망신인데. 5학년 때 입선했으니까 6학년 때는 못 해도 입선은 되어야 체면은 구겨지지 않을텐데... 글 쓰기 전보다 걱정이 더 생기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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