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생 24
내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6) 저장은 필수
(지은이 각주; 어젯밤에는 간만에 무슨 글빨지수가 초싸이언이 되었는지... 피곤한 뇌를 거머쥐고 오늘 20일 이른 새벽까지 매달려 있었더랬다. 주로 태블릿을 무선키보드에 끼워넣고 습작을 하는 편인데, 잠들기 전 침대에 누운 채로 핸드폰을 이용해서 몇 자 끄적거리다가 그만 거실로 나와버렸지 뭔가. 가족들이 이미 잠든 불꺼진 거실의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아니 약간 애매한 자세로 몸을 잔뜩 구푸리고 앉아서 한편 두편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엉 이거 어디 갔어. 한참을 신나게 쓴 다음에 필요한 단어를 찾아보느라 잠깐 휴대폰 다른 창을 띄웠다가 브런치스토리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 빼곡히 차곡차곡 채워나간 "나의 일생 24" 을 쓰던 그 창이 훅 하고 사라졌다. 후 하고 불어서 꺼져버린 생일케이크 위의 나이 갯수 양초마냥 다시 재생할 수 없다는 아니 다시 환생시킬 수 없다는 절망에 밤새 몸부림쳐야만 했다. 몇 줄 더 써내려가고나면 발행하기 전에 한번쯤은 저장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조금씩 잊혀져가서 마음이 왠지 서글퍼지는 내 뇌 속의 오래 묵은 과거 기억과 추억들의 뭉치처럼, 다시금 돌이킬 수도 없는 40년 전 그 국민학교 시절의 잔상들처럼 그렇게 그렇게 사라져버린 나의 일생 한 자락... 또다시 용기를 내어 이 아침에 태블릿을 꺼내보았다. 무선키보드의 다소 둔탁한 터치소리를 위안삼아. "저장은 필수, 발행은 선택" 이었다.)
"우편번호 150-790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8번지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18번지" 혹시 이런 주소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몇 분이나 계실까. 바로 한국방O공사. KOS의 옛날 주소다. 뭐 옛날 주소라기 보다는 예전에 도로명주소로 바뀌기 전까지 계속 사용되오던 오래된 "KOS의 지번 주소" 라는 게 좀더 명확할지도. 한 가지 더 고백할 것이 있는데...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불현듯하게 만든 에피소드가 하나 있긴 하다. 어젯밤 내내 요걸 인터넷 구석구석 검색하다가 결국 실패에 그치기는 하였는데... "옛날옛적에" 애니메이션처럼 매주 목요일엔가 한 편의 전래동화를 10~15분 남짓 짧고 간략한 단막극 형태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인가 코너가 KOS 1TV에 있었더랬다. 그 프로그램 제목은 나의 뇌 어딘가에 싸그리 지워진 모양인데, 그 내용들은 그리고 그 장면들은 어렴풋이나마 눈앞에 아른거리기는 한다. 벌써 35년은 족히 지났으니 그 제목 기억할 정도면 내가 진즉에 멘사에 가입을 하고도 에누리가 있었을 게다^^ 그 프로그램에서 어느날 "금도끼 은도끼" 였는지 "선녀와 나뭇꾼" 이었는지 암튼 나뭇꾼이 등장하는 연극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의 특징은, 연극이 다 끝나고 나서 맨 마지막에... 목소리 좋은 성우 분이 "이 이야기를 읽고 느낀 점이 있는 어린이는 시청소감을 관제엽서에 담아 방송국으로 보내주세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중간 생략)~ 선정된 어린이 한 명에게는 다음주 방송에서 그 내용을 소개하고 상품도 보내 드립니다." 요약하자면 대강 이런 식의 골자였으리라. 어 시청소감도 소개해 주고 거기에 상품까지. 순수한 바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무슨 근거없는 자신감의 발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방송이 끝나자마자 나의 발걸음은 곧장 관제엽서 파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렵사리 어머니한테 받은 돈으로 거금 100원을 들여 관제엽서를 한 장 샀다. 여러 장 사면 어머니한테 쌩돈 썼다가 야단 맞을까 진짜 딱 한 장을 샀다. 거기에 행여 찢어질세라 몽당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정성스레 한 자 한 자 심혈을 기울여 시청소감을 써내려갔다. 사실 관제엽서는 뻔한 엽서 크기에 "보내는 사람" 과 "받는 사람" 주소란을 제외하면, 앞뒷면을 모두 다 합친다 하더라도 몇 마디 쓰기도 벅차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본 시청소감을 한 자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진짜 빼곡하게 빈틈없이 채우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집 근처 빨간 우체통으로 직행했다. 이거 서울까지 도착하기는 할까. 멀리 있으니까 적어도 4,5일은 걸리겠지. 다음주 방송시간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도착해야 할텐데. 관제엽서를 띄워 보내고 나서 1주일 동안 노심초사 내 마음은 붕붕 하늘에 떠다니는 듯 다른 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뭐랄까 설레이고 신숭생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