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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생 25

내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7)

by 특급썰렁이

1984년 계절조차 기억에 없는 어느 날의 오후. 집 앞 공터에서 딱지치기랑 다방구를 같이 하자는 골목 친구들의 콜링을 만류하고 나는 일찌감치 텔레비 앞에 앉았다. 드디어 목요일 오후 4시쯤이었던가. 문제의 TV 프로그램이 시작하는 바로 그 시간이었다. 통상 그 날의 전래동화를 들려주기 전에 잠시잠깐 "지난주 시청소감 선정결과" 를 성우 아저씨가 읽어주는 시간이 있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계O국민학교 1학년 4반 14번 OOO 어린이가 보내준 소감은..." 라고 성우 아저씨가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하는데, 정말 심장이 벌컥 튀어나오는 줄만 알았다. 누나 누나 이거 봐 내가 텔레비에 나와. 진짜 순식간에 성우 아저씨의 멘트가 지나가는 통에, 뒤늦게 달려온 큰누나 작은누나에게는 내 이름 석자가 포함된 자막 밖에는 보여주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가 아니 정확히는 내 이름이 방송에 나온 건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 그 자체였다. 그 다음날 아침 등교해서 교실로 들어섰을 때 학급 친구들의 반응은 더 크고 더 짜릿했다. 어제 나만 본 게 아니었다. 아마 전교생 2500명 중에서 절반 이상은 보았으려나. 당시 볼 거리조차 한정되어 있었던 터라서 더더욱 많은 국민학생들이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제히 텔레비 앞에 앉아 있었을 테니까. 지어 어느 선생님조차 내게 말을 걸어 오셨다. OO 네가 어제 KOS TV에 나왔다면서. 장하네. 학교 이름도 빛내고. 아직 교내 글짓기대회조차 한번 참가하지 못했던 햇병아리 글쟁이였지만, 나의 싹수는 그 때 그런 형태로 알을 깨고 나와서 그렇게 그렇게 차츰차츰 하나하나 이 세상에 보여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또다시 원래의 얘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일년 내내 고심을 거듭했었다. 길 가다가도 문득문득 글감이 생각났다. 자다 일어나도 밤사이 꾼 꿈들 중에서 혹시 괜찮은 글거리가 있었나 가만히 되짚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하지만 창작의 고통이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강산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수도 없는 산전수전 공중전 우주전까지 나름 격변의 삶을 살아왔다 자부하는 지금의 중년인 나에게도 쉽지 않은 작업인데 하물며 고작 국민학교 5학년 12살에서 6학년 13살에 불과하던 어리디 어린 나에게 그건 고통이다 못해 자못 미처 출산까지 이르지 못한 "난산의 단계" 그 수준 그 이상이었으리라. 렸을 적 읽었던 책들 중에서 그 유명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소설 맨 앞쪽의 머리말엔가 에서 읽은 내용이 있다. 작가인 스티븐슨이 어느날 자고 일어났는데 밤새 꾼 꿈이 너무 해괴망측한 데다가 기분나쁠 정도로 선명히 기억에 남아서, 이 내용들을 잊어먹지 않으려고 곧장 머릿맡의 메모지에 번개처럼 갈겨쓰고는... 두문불출하고 사흘밤낮으로 머리를 싸매어 초고를 완성하였다는 풍문이 있다고 했다. 나도 그런 꿈이라도 한번 대차게 꾸고 나면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될텐데... 그 무렵 한창이나 유행하던 "행운의 편지" 마저도 제법 긴 내용의 나름 짜여진 구성을 자랑하는데... 하물며 내가 그 정도도 못 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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