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5편
사랑은 기술이다
<사랑의 기술>이라는 제목에 다소 회의적이었다. 사랑하는 데 기술이 필요하다는 건 동의하지만 기술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랑은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개념인데 사랑을 기술적인 측면으로만 살펴보는 건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완독을 하고나서야 내가 이 책에 대해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 식견이 좁은 탓에 책의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책의 제목만큼은 잘 지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에리히 프롬은 도입부에서 질문한다. “우리 문화권의 사람들은 사랑의 경우 명백히 실패하고 있으면서도 왜 사랑의 기술은 도무지 배우려고 하지 않는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물음이었다. 나는 사랑을 아는가.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 법을 아는가. 나는 사랑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기술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사랑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다. 속이 꽉 찬 둔기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얼떨떨했다. 얼른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열의가 생겼다. 마음을 다잡고 에리히 프롬의 제자가 된 것처럼 겸허하게 책을 한 줄씩 읽어나갔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을 설명하기에 앞서 인간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인간은 누구나 분리 상태에 처해있기 때문에 사랑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분리란 인간은 철저하게 혼자라는 뜻을 의미한다. 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다른 존재와 거리를 두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른 존재와 하나가 될 수 없다. 인간은 분리 상태를 극복하지 못해서 외롭고 불안하다. 참을 수 없는 고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함으로써 다른 존재와 하나가 될 수 있다.
사랑은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능동성, 보호, 책임, 존경, 그리고 지식이다. 사랑은 능동적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게 아니다. 사랑은 보호한다. 보호란 지킨다는 의미를 넘어서 무언가가 건강하게 자라나도록 전적으로 지원하는 행위를 뜻한다. 사랑은 책임진다. 사랑하는 상대의 일이나 문제를 마치 자신의 그것처럼 소중히 여긴다. 사랑은 존경한다. 존경은 위인처럼 우러러보는 게 아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이다. 사랑은 지식이다. 사랑하면 그를 더욱 알아가려고 한다.
그의 글을 읽으며 확고하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바로 사랑은 무지막지하게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실 사랑이 어렵다는 건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얼마나 사랑에 대해 무지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했는가.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니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한편으로 희망이 생겼다.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나에게 사랑은 수수께끼투성이였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이 기술이라고 명시했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워도 기술은 기술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면 인간은 언젠가 기술을 마스터할 수 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말하고 싶다. <사랑의 기술>의 첫 출간연도는 1956년이다. 7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에도 이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 <사랑의 기술>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책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