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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권재 Sep 18. 2023

[도서 리뷰] 면도날

책을 읽읍시다 9편

서머셋 몸, 면도날, 민음사(2009)


인생 그 자체의 아름다움


사랑스러운 래리

지금까지 읽은 소설에서 어떤 인물이 가장 매력적이었냐고 누군가에게 물었을 때 <면도날>의 “래리”라는 대답을 들었다. 나중에 그 소설의 작가가 서머셋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를 읽어본 적 있다.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남자의 삶을 다룬 소설이었다.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를 만나고 인간이 입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달과 6펜스>를 워낙 재밌게 읽었던 탓에 <면도날>에 적잖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면도날>은 내 기대를 가뿐히 뛰어넘는 작품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래리는 찰스 스트릭랜드만큼 이나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래리는 사랑스러운 인간이었다.


래리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구하고 진리를 찾아헤맨다. 원래 래리는 또래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가 달라진 건 세계 1차 대전에서 돌아온 후부터였다. 전쟁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그는 일자리를 얻지 않고 일 년간 소일하며 지낸다. 그러더니 어느 날 고향인 시카고를 떠나 파리에서 2 년간 살고 오겠다고 선언한다. 뜬금없는 래리의 발언을 듣고 주변에서는 그를 냉소하고 래리의 약혼녀 이사벨은 그를 기다리겠다고 한다. 래리는 파리로 떠나 삶을 탐구한다. 그러나 약속한 2년이 지났음에도 래리는 이사벨에게 파리에 남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그녀와 파혼한다. 이후 래리는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며 진리를 탐구한다.


인생 그 자체의 아름다움

<면도날>에는 래리말고도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상류 사회에 속하고 싶어하는 지독한 속물이지만 내면이 따뜻한 엘리엇. 사랑과 이익 사이에서 이익을 택한 이사벨. 승승장구하다 실패를 경험하는 그레이. 인생의 배신을 견디지 못한 소피. 화가로서의 새 삶을 사는 수잔.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에 맞선다. 한 인물은 다른 인물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개성과 매력이 있다. 이것이 <면도날>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면도날>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스럽다. 마치 피아노는 피아노만의 소리가 있고 트럼펫은 트럼펫만의 소리가 있는 것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인생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 서머셋 몸은 인물을 편애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삶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인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다. 나는 서머셋 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사랑했던 사람 같다. 누군가를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문학이 귀한 것은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던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말이 기억난다.


쉬운 소설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서머셋 몸은 쉬운 글을 쓴다. 글에 군더더기랄 게 없다. 소설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그의 소설은 쉽게 읽을 수 있다. 그저 쉽게 읽히기만 하는 소설이라면 이렇게 추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면도날>은 읽기 쉬울 뿐만 아니라 재밌다. 마치 맛있는 과자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기분으로 책을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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