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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집간호사 정화 Sep 10. 2023

엄마로 산다는 건 말이야.



엄마로 산다는 건, 돌봐야 할 대상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아이도 있고, 남편도 있고, 집안 일도 있다. 어떤 엄마들은 여기에 바깥일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인당 30여 명의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일보다 엄마로 사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나 하나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던 철없던 아가씨였다. 그런 내가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가 되었을 때, 그 누구도 엄마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려주지 않았을까?


엄마는 차마 나에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라는 자리에 있기에, 엄마라는 자리의 무게에 대해서 나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내가 엄마라서 나도 그렇다. 엄마라는 자리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자리인지 차마 나의 딸에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자리에 서서 [엄마이자 나로 살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단 한순간도 꿈꿔본 적 없는 것들을 삶에서 만나고는 했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그랬고, 엄마의 자리에 서는 것이 그랬다. 어릴 적 나는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무서웠다. 내 인생 하나도 내가 책임지지 못하는데, 아이의 삶을 책임질 자신 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서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서 진심으로 꿈꾸게 되었다.


엄마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엄마가 되었으니 이왕이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엄마는 어떤 엄마인지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엄마의 표본은 우리 엄마 하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엄마는 나에게 최고의 엄마였다. 그러나 그런 엄마가 내 아이에게도 좋은 엄마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어떤 엄마인지 찾아내야만 했다. 그래서 스스로도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만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를 마주하려 애쓰지 않았다. 나는 덮어놓고 그저 좋은 엄마만 되려고 하니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나의 케파를 벗어나는 일들이 계속 주어졌다. 마치 신규간호사 시절에 할 수 있는 일은 1 정도인데 10개의 일이 쏟아졌던 그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땐 퇴근이라도 있지. 퇴근도 없는 이 일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파기로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만 했다.



첫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면서 나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위태위태한 줄을 타고 있었다. 6개월 아이를 혼자 돌보는 것이 나를 얼마나 고립시키는지 외롭게 만드는지 몰랐다. 간호사 일을 때려치울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내가, 일을 쉬면서 돈을 벌지 못하면서 이렇게 자존감이 떨어질지도 몰랐다. 어디 가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었다.


엄마가 된 걸 후회해.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혹시나 내 이야기를 아이가 들을까 봐, 볼까 봐, 느낄까 봐 두려웠다. 물론, 아이 탓이 아니었다. 내가 부족했기 때문인데, 아이가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할까 봐 무서웠다. 마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지 못하는 나처럼 말이다. 그러나 후회를 하고 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 나를 스스로 망가트리는 자책이 아니라 성장의 자리로 나아가야 했다.



나 하나도 벅찬 내가 내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가 주는 사랑, 감정, 사고, 태도, 자세, 생활 습관 전부다 나에게 받을 텐데,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상처도 주게 될 것이다. 좌절도 배우게 될 것이다. 실망도, 포기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내가 먼저 결정해야 했다. 실망도, 포기도, 좌절도, 상처도 만나면 회복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사실 어쩌면, 엄마로 산다는 건 나 하나라도 제대로 잘 돌봐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나는 모든 순간, 내 아이가 배워도 좋을 방식으로 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어느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나에게 오는 모든 순간을 잘 마주하고 보내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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