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목의 마지막은 또 이상한 말이다. 음, 이상한 말 시리즈로 적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머님이 나에게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의아하고 신기하고 이상하긴 하다. 그래서 이상할 말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을 정확히 표현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명절 전 날, 양가에 드릴 선물을 준비하고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 내일 몇 시까지 가면 되는지 물어볼 겸 남편이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목소리에서 이미 화가 난 것이 옆에 핸드폰 밖까지 느껴졌다.
“왜.”
“내일 몇 시까지 가면 돼?”
“뭘 몇 시까지 와. 빨리 와야지.”
“왜? 할게 많아? 그냥 간단하게 하자.”
“참나. ㅇㅇ은 뭐 해.”
“옆에 있지. 집에 가고 있어.”
“근데 왜 네가 전화해.”
“누가 전화하면 뭐 어때.”
“명절 전에는 ㅇㅇ이 전화해야지.”
“그냥 아무나 전화하면 되지.”
“원래 명절 전에는 여자가 전화하는 거야.”
“원래가 언제부터 원래인데. 아 또 이상한 말 좀 하지 마.”
“뭐가 이상한 소리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던 명절 전 날, 내가 전화를 하지 않고 남편이 전화를 했다는 것으로 내 행동을 문제 삼았다. 심지어 마지막 말에 앞으로 명절 전에는 내가 직접 전화하게 하라는 말이 전화기 넘어 내 귀에 들어왔다.
근데 여기서 잠깐.
결혼하고 어머님의 행동 중에 굉장히 신기했던 게 내가 본인에게 자주 전화하길 바라면서 내 남편이 우리 부모님에게 전화를 하는 건 내켜하지 않으셨다. 남자는 그렇게 자주 전화하는 게 아니라나 뭐라나.
근데 보통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상대 부모님께 잘하라는 그런 덕담을 하지 않나요?
성별을 떠나서 아무리 어머님이 고리타분한 분이라고 할지라도 상대의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에는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머님은 이 부분에서 매끄럽지 않았다.
우리 집은 나에게도 나의 친오빠에게도 상대 부모님께 더 잘해드리라는 말을 자주 하시는데 어머님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더 잘하고 더 전화를 많이 하길 원하셨다.
다음 날, 어머님의 표정은 경직되어 있었다. 딱딱한 모습으로 부침개를 부치고 계시는 옆 자리에 앉아 대화를 시작해 봤다.
“어머님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준비하는 건 하나도 안 힘들어. 재료 사 오는 게 힘들지. 그래서 나는 이제 며느리 보면 며느리 차 타고 장 보러 다니고 그럴 줄 알았는데, 우리 며느리는 운전을 못해서 좀 그래.”
이젠 어머님의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많아진 만큼 어떤 성향인지 잘 알고 있어서 만약 지금 이런 식으로 말했다면 아주 심플하게 받아 칠 준비가 되어있는데 이때만 해도 결혼한 지 1년도 안된 시기라 상대에 대한 파악이 진행 중인 상태였다. 그러니 저 말을 듣고 이게 정말 무슨 말인지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사람과 사람의 대화에서 이러한 식의 대화는 처음 겪어본 것 같다. 마치 너만 운전 잘하면 참 편했을 텐데 라는 뉘앙스. 그러니까 본인을 우위에 두고 나를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말.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무관심했다.
어머님은 나랑 장을 보러 가고 싶었나 본데 내가 저런 식의 말을 들으면 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사라지지 않을까? 아무튼 생각의 회로가 이상하게 뻗어있었다. 난 오래전부터 집을 좋아했고, 집은 평온하고 행복한 곳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머님과 같이 있는 이 집은 전혀 평온한 곳이 아니었다. 억지웃음조차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이라 점점 표정이 건조해져 갔다.
어머님 방식으로 며느리 대하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일 제사 지낼 준비를 다 마치고 집에 있는 음식으로 저녁을 간단히 먹기 위해 나는 그릇에 밥을 푸고 남편은 식탁을 닦기 위해 어머님께 행주를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근데 그때 어머님 입에서 나온 말은,
“왜 네가 닦아. ㅇㅇ한 테 닦으라고 해.”
누군가를 대할 때 그 사람의 본모습은 큰 사건보다 일상적인 순간에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서 진짜 자기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나는 작은 말과 작은 말 사이에서 뒤틀림이 없는 사람, 습관적으로 말에 먼지가 덜 낀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머님은..
남편도 순간 표정이 확 굳어버린 채 화를 내며 행주를 낚아챘다.
그리고 머쓱하던 어머님의 표정을 봤다. 어머님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한지 인지하고 있던 걸까?
지금까지는 연습게임에 불과하고 이때의 문제는 역시 다음날 제사를 지내는 와중에 벌어졌다.
한 명씩 절을 하고 나도 절을 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내 움직임에 따라 어머님의 시선도 같이 따라왔다. 뚫어지게 보는 그 모습에서 나한테 당장 지금 뭔가 말하고 싶다는 표정을 읽었다.
어머님: “왜 큰절 안 해? 큰절 몰라?”
나: “큰절이 뭔데요?”
남편: “큰절이 뭔데. 그리고 ㅇㅇ네는 절 안 해.”
어머님: “큰절이 큰절이지 뭐긴 뭐야.”
남편: “아니 그러니까 설명을 해주던지.”
어머님: “그런 건 친정에서 배워와야지.”
어머님을 알게 되고 어머님에 대한 애정이 한순간에 냉각되던 순간들이 세 번 정도 있다. 그리고 이게 첫 번째였다. 마치 너네 집에서는 이런 것도 안 알려줬냐는 저 말투, 너는 그것도 모르냐는 저 말투, 마치 자신이 대단한 것처럼 나를 대하는 저 말투. 며느리한테 굳이 본인이 신경 써서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 아주 쉽게 물총 쏘듯 쏘아댔다. 그리고 그건 습관처럼 고착되었다. 내가 큰절을 하지 않아서 화가 나도 친정을 운운해선 안되었다.
남편은 이날 화가 많이 났다. 검색창을 뒤져 큰절에 대한 모든 것을 찾아내려 했다. 네이버에서도 위키백과에서도 유튜브에서도 큰절에 대한 자세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고. 그럼 엄마가 생각하는 큰절이 뭐냐고.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하냐고. 그럼 엄마가 알고 있는 큰절을 한번 해보라고.
남편은 핸드폰 화면을 어머님께 보여줬다. 어머님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본체 만 체 “이게 뭔데.”라는 말을 하며 왜 큰절을 모르냐는 말을 덧붙였다. 이 상황에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답변이었다.
어머님은 큰절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고, 그 생각만을 앞세우기 위해 남편이 하는 말에 대해선 귀를 닫았다. 아마 어머님이 지적하는 것에 대해 내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던 걸까. 어머님 제가 잘 몰라서요. 이런이런 어떡해요. 이런 모습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행동할 가치도 없는 걸.
+ 덧붙이는 글 +
아마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이번에 적은 내용 중에 어른에게 안부전화 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렵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화하는 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내가 적은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에는 또 다른 자잘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존재했다. 작은 일화들은 점점 전화를 할 필요성을 잃게 만들었다. 전화를 하는 행위에도 마음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점점 식어갔다.
남편의 talk
당신의 행동은 당신의 아들조차 반대편에 서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