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새미 Feb 07. 2024

이번 명절에 친정을 갈 거냐고 묻는 시어머니의 이상한말


7.



어머님은 제사와 명절을 끔찍이 여기신다. 그러니까 저 두 개는 어머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사이랄까. 난  삼십 년 이상 저 두 가지에 아무 생각(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없이 살아오다가 어머님을 만난 후부터 안타깝게도 긍정적인 인식이 살짝 줄어들었다. 뭐, 당연한 일이지만. (이미 앞에서 적은 에피소드들) 절을 못한다고 친정을 운운하고, 제사 지낼 때 치마 입으라고 (명령)하고, 제사 재료 사가지고 걸어오는 것이 무거운 걸로 내가 운전을 하지 못해서 아쉽다는데 그걸 듣고 어느 누가 제사에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모든 것은 연결에 연결이 되는 법. 그러다 보니 과하게 많은 음식들,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들 마저 그렇게 썩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머님이 명절을 끔찍이 생각한다는 것은 나를 대하는 태도 외에 짧은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가령 우리 집 친오빠는 명절에 출근을 해야만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명절에 얼굴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새언니에게 오지 말 것을 당부한다고 하니 어머님이 화들짝 놀라시며 언니는 왜 안 가는지, 명절인데 언니라도 가야 된다고, 자기는 절대 이해 못 한다고.


그렇게 명절을 중요시하는 분이 이번 추석에 친정에 갈 거냐고 하는 이 물음은 그야말로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한 달 반 전에 엄마 생신이라 다녀왔는데 또 가냐는 말이었다. 대화는 갑자기 주사위 던 지 듯 뜬금없이 시작되었다.


“이번 명절에 친정 가?”

“네. 아마 가겠죠?”

“최근에 집에 갔다 왔는데 뭐 하러 또 가”

(가고 말고는 제가 판단합니다만, 그럼 지금 우리도 어머님댁에 있으니 안 와도 되는 거 아닌가요?)


이 날 거의 처음으로 화가, 뜨거운 화가 계속 식지 않고 올라왔다.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모습이, 그 목소리가, 그 말투가 내가 모두 보면 안 될 것 같은 걸 본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도 갑자기) 통보 같은 말을 시작하셨다.

“이번 명절은 대구에 가서 제사 지내자.”

(아버님의 산소는 대구에 있다. 아버님은 경기도 수목장으로 해달라고 하셨지만 이것도 어머님 마음대로 가족들 산소가 다 모여있는 대구에 해야 한다며…)

“명절에 대구를 가자고?”



남편은 어머님께 그럼 대구를 명절 전날 평일에 다녀오고 명절에 처가댁을 가겠다고 했다.

어머님은 제사를 누가 명절 전에 드리냐고 반대했다.

(제사를 언제 지내는 건 그렇게 중요하면서 우리 집에 또 가냐는 말은 참 쉽게 하시네.)

남편은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냐고 물었다.

어머님은 빨간 날에 가야 된다고 말했다.

남편은 조율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꼭 차 밀리는 날에 가야 되냐고 말했다.

어머님은 기차 타고 가는 건 어떤지 말했다.

남편은 차를 두고 가면 거기서는 어떻게 하자는 건지 말했다. 우리는 뒤에 일정도 있지 않겠냐고.


놀랍게도 이 논쟁은 친정 엄마의 의견을 듣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며칠 뒤 엄마에게 이번 명절에 대구를 갈 수도 있어서 우리 집은 언제 가는 게 좋을지 의논하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

엄마는 대충 스토리를 듣더니 나에게 오지 말라고 말했다. 이번 명절에 안 와도 된다고 했다. 시댁에서 원하는 거 해 드리라고 했다.

엄마가 오지 말라고 해서 결과는 심플하게 되었지만 이런 식으로 상황이 돌아가는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편이 어머님께 장모님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배려해 주셨다고. 그러니 대구를 언제 갈지 정하자고 했다.

어머님은 우리 집에서 안 와도 된다는 말을 듣고 그래?라고 답하더니(배려해 준 사람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들은 듯이) 이제 와서 너희들 편한 대로 하라고.

갑자기 왜 선심 쓰는 듯이 말하는 걸까 싶었다. (진짜 왜 갑자기 선심 쓰듯이? 그건 선심이 아닙니다만) 마치 이번에 우리 집을 안 가는 게 당연히 그래야 했다는 듯이, 한쪽에서 발을 빼니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이, 마침내 원하는 바를 이룬 것처럼.

지금껏 빨간 날을 고수하던 어머님은 그 전날 다녀오자는 말에 아주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했다.

(명절에 우리 집에 갈 수도 있었지만 엄마는 누누이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다. 이동하느라 힘들 텐데 올 필요 없다고.) 그렇게 대구만 다녀왔다. 어머님의 태도의 방향엔 (기분 나쁘게도) 우리 집 방문 유무가 중요했던 것이다.


한 달 반 전에 다녀왔으니 명절에 우리 집에 또 갈 거냐는 그 물음. 가지 않았으면 하는 전제하에 물어본 그 물음으로 어머님은 원하는 바를 이루셨다. 하지만 의도가 드러난 그 질문이 상대의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하셨다.


하고 싶은 말 툭툭, 다듬지 않는 말투에는, 예의가 결여된 말투에는 (평화주의를 추구하는) 나조차 상대에게 온정을 다하기 어렵다.



남편의 talk

“최근에 집에 갔다 왔는데 뭐 하러 또 가”

??

???

진짜 친한 친구 외 남에게도 저렇게 말하면 욕먹는다

적어도 남에게 하는 것보다 못할 말이나 행동은 하지 말자




+덧붙이는 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친정에 가지 않은 것.


통상 많은 분들이

오지 마 = 그래도 오면 좋지

괜찮아 하지 마 = 해주면 좋지

로 해석하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저와 부모님은

오지 마 = 제발 오지 마

괜찮아 = 진짜 진짜 괜찮다고

괜찮아 하지 마 = 제발 하지 마

해 줘 = 꼭 해 줘

로 대화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엄마가 오지 말라는 말은 정말 오지 말라는 말을 강하게 한 것이고요. 부모님은 바로 지인분들과 골프 일정을 잡으셨습니다.


2) 명절에 친정 잘 가고 있습니다.

만약 그 후 다른 방식으로 어머님이 친정을 가지 못하게 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큰 문제가 되었겠죠. 물론 “친정에 또 가?”라는 저 말 자체도 큰 문제지만요.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말해버리는 저 말에 대해 적고 싶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관계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드는 시어머니의 말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