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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달리기
기계처럼 달려오던 나에게도 갑자기 벽에 가로막히는 순간이 생겼다. “언제까지 이렇게 뛰어야 하지” 뇌리에 순간 박힌 이 한 문장은, 다음날 새벽기상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새벽(더 이른 새벽에) 달리기를 시작한 지 벌써 두어 달이 되었다.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사랑하는 크로스핏과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 사랑하는 크로스핏을, 새벽 6시에 달리기를 하면, 조금만 야근을 하면 울산이라는 도시 특성상 금방 마지막 수업을 놓쳐서, 못하게 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해졌다. 그래서 생기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컸고, 결국 달리는 시간을 한 시간 당기기로 했다.
새벽 4시 50분에 기상에서 회사 헬스장에서 하는 달리기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감사하게도 옆자리 M이 기꺼이 함께 달리겠다 요청하여, 남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 더 날카로워지는 나의 트리거는 잘 발동했으며, 아침에 목욕까지 하고 나오는 일상은 생각보다 상쾌했다.
그러다가 문득, 직장인인 내가 이렇게까지 운동을 하는 게 맞을까, 이 시기에 맞는 투자가 맞을까, 저강도 달리기인데 지금 8.3km/h라면 인간인 내 신체의 한계는 있을 텐데 어디까지 속도를 올릴 수 있을 것이며 그 이상이 가능할 것인가, 매일 1시간을 이렇게 투자하는 게 맞을까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한 문장을 읽고는 마음이 편해졌다. “케냐 마라토너의 저강도는 17km/h 이상이다.”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꾸준히 달려도 내가 성장할 여력은 충분히 있겠구나, 0.1씩 좋아지면 17이 되려면 87 X 12주 = 7308일(20년)이 걸리겠구나, 그때쯤이면 나도 나이에 맞춰서 속도가 느려지는 중이겠지. 지금 하는 추상적인 행동들이 구체화되고 목적지가 명확해지니, 막연한 불안함이 사라지고 머리가 개운해졌다.
나는 그 순간을 꼭 기억할 것이다. 살면서 이런 순간이 여럿 다가오는 것 같다. 이리저리 너무 복잡하다가도 순간 아주 단순한 문장 하나에 생각이 정리되는, 그런 순간. 그래서 순간 너무 다양하고 많은 불안함이 나를 붙잡더라도, 그 흔들림에 잠시동안은 마음 편히 몸을 맡기겠다. 그렇게 흔들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문장이 있을 테니까.
-J-
운동, 그 이상의 무언가
15년 전, 2009년의 J가 2024년의 J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금 이거 실화야..?"
2024년의 J가 15년 전으로 돌아가 그녀의 귓가에
'너는 나중에 매일매일 운동을 하는 사람이 돼!!'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2024년의 J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일주일에 3-4일 정도 운동을 다니며, 주 1회로 할만한 또 다른 운동이 없나 고민하는 삶.
주로 격한 운동을 하니 이완 운동으로 할 만한 것이 없나 찾아보는 삶.
20대의 J를 알았던 사람들은 도저히 믿지 못하는 그런 삶이다.
변화하는 J를 보며 친구 K는 '이건 기운이 바뀌는 거라고 밖엔 설명 못해.'라고 했다.
최근에는 3개월 정도 운태기를 겪었는데, 달리기가 많이 나와서인지 내 체력이 떨어져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 운태기가 왔을 때 사람들에게
"오래 다니면서 운태기 온 적 없으세요?"라고 물었더니
"있죠, 그래도 그냥 나와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나도 일단 그냥 계속 나갔다. (사실은 다른 운동으로 옮겨 탈까 하고 요가를 등록하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암튼, 중요한 건 어쨌든 계속 나갔더니 다시 재밌어졌다는 것이다. 요가를 다녀보니 나에게 맞는 운동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러나저러나 내 집 같은 곳은 여기구나 싶었다. 내 마음은 잠깐 떠나갔다 돌아왔지만 그곳은 그대로이고, 나는 또 종종종 걸어 내려가 옷을 갈아입고 바닥에 앉아 '또 폼롤러만 하고 있느냐'는 말을 들으며 꿋꿋이 폼롤러에 다리를 올린다. 운동의 고통은 잠깐이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개운하다.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 있던 친구들은 이제 무거움과 가벼움을 따져보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빨라진 퇴근 시간으로 평소와는 다른 시간에 운동을 가고 있지만,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과는 어느덧 4년째. 얼마 전에는 그중 (제일 친한 친구들이 아닌) 몇몇 사람들과 1박 2일로 산에 다녀왔는데 친구들과 여행 갔을 때만큼 편한 마음이 들어 낯설었다.
2021년 볼이 홀쭉해진 동생을 보고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시작했던 운동이 이제는 나에게 '사람이 몸을 단련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단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20대의 나, 그리고 그 시절의 친구들은 절대 믿을 수 없을 나의 2024년.
하지만, 여전히 4년 차 운동인이라고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쉽게 지치며 1-2년 차 수준의 운동 퍼포먼스를 간신히 내고 있음은 비밀로 하고 싶다.
-P-
아이돌이 다이어트를 구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먹성이 무척 좋았다. 오래된 시간임에도 기억나는 장면은 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는 내 옆에 앉아 “어쩜 이렇게 잘 먹을까”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입안을 빈틈없이 음식으로 채우고 있었으니. 반면에 할아버지는 점점 부풀어 오는 손녀의 모습을 걱정하셨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걱정할 정도면 내 몸의 부피가 심각했던 모양이다. 삼 시 네 끼와 간식 두 끼를 먹으며 키를 쑥쑥 키웠고, 더불어 살도 같이 키웠다.
누구도 내가 먹는 걸 말릴 틈 없이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먹는 게 가장 좋았던 시절. 먹는 것만 알았던 내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오직 한 가지를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동. 방. 신. 기. 팬. 사. 인. 회. 그리고 ‘이 모습으로는 오빠들 앞에 설 수 없어’라는 생각으로 헬스를 했다. 이때가 내 인생 처음으로 운동을 시작한 시기였다. 러닝머신 한 시간 반, 자전거 한 시간 반. 하루에 총 3시간을 헬스장에서 보냈다. 중학생인 나에게 아이돌은 그 시절 전부였다. 헬스장 입장과 동시에 내 귀에는 Hug가 쉼 없이 흘러들어왔고 노래가 절정으로 다다를 때 내 운동 강도도 절정으로 올라갔다. 노래와 나는 하나처럼 움직였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하니까 운동기구에서 내려올 수가 없었다.
그들의 노래 덕분에 살은 일주일에 2킬로씩 빠질 만큼 쭉쭉 줄었고, 바지는 단추를 닫고 입을 수 있을 만큼 모든 옷이 커졌고, 한 달 반동안 총 15킬로를 뺐고, 드디어 내 키에 맞는 몸무게를 찍었다. 그리고 난 그때 운동을 시작으로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하루에 십 분씩이라도 운동을 해야 개운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어느덧 삼십 대 중반. 십여 년 전보다 운동이 너무 재미없지만 맞는 운동을 찾고 있다. 운동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운동이 필요한 사람일 테고, 무엇보다도 나의 삼십 대는 무슨 옷을 입어도 어울리지 않아서 옷을 탓하기 전에 몸의 군살을 좀 다듬을 필요가 있다. 팬사인회를 준비한 만큼의 의지는 없지만 말이다.
아, 그 당시 다이어트는 성공했지만 팬사인회는 흑역사로 남았다. 난 최강창민 앞에 섰고, 기쁜 나머지 엉엉 울었고, 울지 말라는 따뜻한 음성에 크헝헝헝 더 울다가 조심히 가라는 말에 끄아아앙 울고 무대에서 내 발에 내가 걸려 아주 묵직한 쿵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셀룰라이트와 같이 날려버리고 싶은 흑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