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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vo Dec 13. 2022

전기차 공조, 그리고 Dutch boy

지오스톰

구멍 난 뚝의 물을 팔로 막았다는 네덜란드 소년의 이름을 따라 지어진 기후제어 프로그램 Dutch boy는 점점 상승하는 지구의 온도와 기상이변을 막기 위해 여러 위성들의 첨단 기능을 이용해 지구의 온습도를 제어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킬링타임용 영화의 특성상 상사하고 치밀한 과학적 설명이 부족하지만, 짙은 밤 홍콩 지하에 깔린 배관을 폭발할 정도로 뜨겁게 데울 수 있는 열을 전달한다거나, 엄청난 수증기로 뭉쳐진 허리케인의 공기를 팽창시켜 에너지를 약화시킨다거나 하는 기능들은 지구라는 시스템도 기계처럼 제어할 수 있다는 상상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영화에 대한 몰입에 도움이 될 듯싶다. 가정용 에어컨도 특정 공간을 대상으로 유사한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는 있겠지만 지구의 기후를 제어한다는 것은 사실 스케일이 매우 달라서 과연 실현가능한 상상인지 묻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항공우주 기술 혁신의 아이콘인 SpaceX가 거듭 발사체를 성공적으로 우주로 보내고 있을 만큼 우주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지구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온난화에 대해서 우리는 다소 위태로운 대응 외에는 해결책이 부족해 보인다. 얼마 전 국제기후회의도 온실가스 감축안은 잠시 접어두고 기후변화 피해국에 대한 보상을 하기로 합의하며 별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를 극적으로 지연시킬 획기적 기술 역시 별다른 논의가 없으니 국제기구에서는 정치적 협상만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 힘으로 통제되지 않는 것이 과연 복잡한 자연계뿐이랴? 비가 오는 여름날 자동차를 타고 에어컨을 켜보면 평소의 온도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선선해서 공조 기능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어, 자동차 실내 공조인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가?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를 맞아 차량 열관리의 어려움이 난제 중 난제라는 사실을 알 때가 된 것 같다.

자, 기존 내연차량에는 연료로 동력을 만드는 엔진이 때로는 난방 에너지를, 때로는 에어컨이 필요한 전기를 만들어 실내 공조를 수행했다. 그렇지만, 엔진이 사라진 전기차에서는 그러한 기능을 위한 에너지원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오스톰의 Dutch boy도 지구상의 기후를 극적으로 조절하려면 막대한 에너지를 제공할 에너지원이 필요하고 지오스톰의 설정대로 지상으로부터 위성까지 모든 에너지를 외부로부터 공급해야 한다면 수백 개나 되는 인공위성에 하나하나 개별 핵 전원을 공급할 수 있지 않겠냐는 위험천만한 생각도 할지 모른다.


인공위성은 우리 머리 위의 궤도를 도는 비행체고 궤도를 벗어난 비행체는 지상으로 추락하고 만다. 수천 km 높이에서 떨어지는 기계 파편도 무서운데, 방사능 덩어리 파편이라면 공포 그 자체 아닌가? 미국의 SNAP-10A 위성도 파편으로 분리되면서 방사능이 누출되었고 우주 데브리를 제거하려는 프로젝트 RemoveDEBRIS가 시작됐고, 러시아의 코스모스 954 위성은 50kg 원자로를 탑재하여 첩보활동을 하다가 캐나다의 호수에 떨어져 1.1 시버트라는 어마어마한 방사능을 내뿜었다고 한다. 그만큼 인위적 기후현상을 만들기 위해서 인공위성에 공급되어야 하는 막대한 에너지원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제껏 에너지원이 되어왔던 엔진을 대신해 전기차 내부의 온도를 방법은 무엇일까? 이제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전기차 배터리의 전기 에너지가 차량의 공조에 필요한 모든 동작의 에너지원이 된다. 차가워진 스티어링 휠과 좌석 시트, 그리고 무릎 워머의 열선도 고전압 배터리, 윈도의 성해를 녹이고 차내 따스한 공기를 공급하는 히터도 고전압 배터리, 여름철 쾌적한 실내 공조도 모두 고전압 배터리 안의 전기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는 배터리 전기로 달리는 차인데 실내 공조로 전기를 다 써버리면 어떻게 달리냐고? 바로 이것 때문에 전기차가 겨울철에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테슬라나 현대차 같이 전기차에 진심인 제조사들은 실내 공조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에너지를 긁어모아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리고 겨울철 주행거리를 늘렸다.


테슬라의 CEO이자 금융시장의 악동 같은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에 적용된 에너지 회수장치인 옥토밸브의 개발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옥토밸브를 열관리의 사령탑이라 칭하고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현대차도 모터, 인버터 등에서 발생한 열을 실내 난방을 위한 프리히팅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제조사의 전기차에도 주행거리를 개선하는 묘안으로 알려져 이제는 일반화된 것 같다. 여기서 논의하기는 어렵겠지만 에너지를 재활용하는 회수율에는 분명 제조사별로 차이가 있는데 바로 높은 회수율을 달성할 수 있는 시스템적 설계가 바로 제조사의 경쟁력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결국 공조가 에너지의 활용이듯, 인위적 기후제어도 상상하기 어려운 에너지가 필요하다. 영화 지오스톰에서 Dutch boy가 구현했던 통제가능한 기후는 핵융합 같이 에너지 분야의 게임 체인저가 나오기 전에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아마 그런 때가 되면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은 전기차의 취약점들 차세대 에너지원을 통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직은 엔진이 빠진 전기차의 공조는 지오스톰에서 나온 기후통제 프로그램 Dutch boy만큼이나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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