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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월 Nov 17. 2020

OT에서 포르노 배우 얘기를 한 복학생

스무 살, 대학에 입학하고 3월 초에 학회 OT를 갔다.



OT란 으레 이런 것

큰 학회이다 보니 (사실상 동아리에 가까운 과 학회) OT에 대략 30명이 넘게 왔다. 오후에 대성리 펜션에 도착해서 수건 돌리기, 장기자랑, 여러 게임들을 했고 저녁에는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지며, 다른 어느 OT와 마찬가지로 토하고, 쓰러지고, 싸우고, 소리 지르고 등등을 겪은 후에, 술은 더 이상 못 마시겠지만 아직 자고 싶지 않은 자들이 8명 정도 둘러앉았다. 6명은 나를 포함한 신입생이었고, 한 명은 한 학번 선배, 다른 한 명은 어떤 학번인지도 모르는 복학생이었다.


복학생: "어떤 포르노 배우를 좋아해?"

복학생은 분위기를 주도했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 주제를 꺼냈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포르노였다. 신입생들은 남녀를 포함해서 모두 쭈뼛거렸다.


원래 대학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나?
고학번 선배는 원래 이런 이야기를 물어보나?
여기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되지?


우물쭈물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신입생을 본 복학생은 자신의 취향을 큰 소리로 떠벌리듯 이야기했다.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스무 살이었기에, 신입생들은 아무도 제대로 반항하지 못했다. 아무런 맥락도 없는 사이에서, 또한 위계가 있는 고학번 선배라는 사람이 먼저 성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이것은 성희롱이라고 말할 능력이 없었다. 주변에는 이를 지적할 수 있는, 저지할 수 있는 선배 역시 없었다. 한 학번 남자 선배는 포르노 이야기에 동조하며 복학생의 이야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답한 사람이었다. 큰 펜션이었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한 시간 정도를 붙들려 있었다. 이후에도 대처는 당연히 없었다. 다른 선배나 동기에게 말해서 이러한 상황을 비판한 후 그 복학생에게 적절한 조치를 내리던가 사과를 요구해야 했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다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사라진 가해자

복학생은 이후 학회에 다시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신입생들이 자신의 말에 적극적으로 대답하지 않았으니 그런 것 같다. (다른 곳에서 또다시 이야기를 꺼냈을까?) 그 사람이 만약 계속 나왔다면 어땠을까. 누구도 그 사람을 제지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은 고통받으며 점차 학회에 나오지 않았겠지. 그렇게 쉽게 포르노 얘기를 꺼낸 그 복학생은 누구였을까. 여전히 여기저기서 그런 이야기들을 '쉽게' '폭력적으로' 꺼내고 있을까.


라면을 끓이자

복학생이 포르노 얘기를 침을 튀겨가며 얘기하다가 한 학번 선배와 담배를 피우러 갔다. 이때 동기 중 한 명이

말했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라면 끓여준다고 할 때니까 여기 모임 파토내고 저기 다른 선배 있는 곳으로 가자." 그렇게 동기는 라면을 '많이' 끓였고, 다른 곳에 있는 선배에게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여기저기서 라면 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몰렸고 사람이 많아지자 복학생은 포르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했을까

오래전 사건이라 기억이 희미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쉽게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 문화이며, 이런 무례함을 보였을 때 함께 지적할 수 있는 제도이고, 그럼에도 계속했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연대이다.


수많은 야만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므로, 똑같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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