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의 시차
어릴 때 즐겁게 봤던 책을 다시 보면 내가 알던 내용이 아닌 것 같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이 글은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의 작품 '땡땡의 모험'을 다시 읽은 날에 대한 기억이다.
어릴 적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었었다.
특히 위기 상황을 특유의 기지로 극복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열광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 전집을 구매하겠다는 꿈을 이루고,
환상과 모험을 기대하며 다시 열어 본 책은 좀 낯설었다.
어린 시절의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인종차별적 요소를 꽤 많이 찾았기 때문이다.
2권까지 읽으며 마음이 점차 불편해졌고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 덮었던 당시 나는 실망과 적지 않은 충격을 동시에 받았다.
내가 좋아했던 책과 작가를 향한 실망도 있었지만, 그런 내용을 재미로만 봤던 스스로에게도 실망했다.
동시에 지금의 나에게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불편한 부분이 있음을 느끼고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 찾았기 때문이다.
이후에 확인하니 작가 자신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사과했음을 알 수 있었다.
판본 수정도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책을 다시 펼치기에는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든다.
이렇듯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생각, 언행 등이 현재 시점에서는 문제가 될 때가 있다.
분명한 건 당시에도 그러한 행동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이 소수이기 때문에 대세가 되지 못했을까?
동감하는 사람이 많아진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문제'로 인식되지 않나 싶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불편함을 인지하는 것에 발생하는 시차.
여전히 이러한 시차를 좁히지 못한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이 이렇게 와닿는 순간이 있었을까?
그러고 나서 생각했다.
나의 지금, 이 순간이 10년 후 불편한 기억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은 혼잣말이라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흑역사로 남을지라도 나를 괴롭히는 불편한 기억이 될 것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는 세상에 맞춰 가는 것이 나의 도리이지 않을까 싶어서.
Question) 어릴적 봤던 책/영화를 어른이 되어 다시 본 경험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