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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마음 May 18. 2020

참, 고맙습니다.

중간년차 - 병원의 파수꾼 

병원, 간호사 하면 가장 떠오르는 단어는 태움이겠지. 

거기에는 신규 간호사가 꼭 화두로 함께 언급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태움은 한 개인의 인간적인 됨됨이 혹은 그 사람의 자기성찰력과 그 사람이 몸담고 있는 병원에서 그 사람에게 지원을 해주지 못했는가 가 함께 시너지를 일으켜 생기는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기는 힘들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개개인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여야, 남에게 못되게 구는 것도 어느 정도 완화가 될 수 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이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힘들어 죽을 것 같을 때, 여유가 없을 때, 남에게 유하게 굴기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신규였을 때는 아니면 조금 신규를 벗어나 1~2년 차가 되었을 때는 선배 선생님들에게 약간의 반항심을 가졌었던 것 같다. 자기는 이것도 안 하면서 맨날 나한테만 뭐라 한다든가. 자기들 실수는 실수고 내 실수는 큰 잘못인양 말한다던가. 입이 삐쭉 나와서는 나만 이 병원의 모든 일은 도맡아 하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 

어느 정도 일을 어떻게 하는 건지에 대한 감도 잡았겠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그렇게 속으로 삐딱하게 생각하곤 했었다. 나보다 일도 더 안 하는 것 같고 나한테 일을 넘기고 자기들은 칼퇴하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너무 억울하고 하소연하고 싶은데 그럴 데도 없고 이것이 내 미래라니. 암담하기만 했었던 것 같다. 

내가 거쳐온 신규 시절을 떠올려보면서 나는 이러지 말아야지.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도 했었고 그들이 내게 하는 잔소리들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고. 그렇게 하룻강아지처럼 한 달 한 달 살아가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하나 둘, 실수가 늘었다. 실수가 늘거나 아니면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이벤트들이 몰아닥치거나. 그런데 언제인지는 모르게 문득 내 곁에 늘 선임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걸 알아차리게 됐다.


약 찾으러 쓰레기통을 뒤지고 물건 개수가 안 맞아서 뒤늦게 남아 카운트 하느라 집에 못 가고 있을 때도 함께 있어주시고. 응급 상황이 났는 데 내가 처음 보는 처방이 났을 때 내가 모르는 프로시져가 시행이 될 때 내가 아무것도 모를 때 물어볼 대상이 있다는 사실. 사실 이건 참 중요한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혼자 일하는 것 같고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것 같긴 하지만 내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에는 그들의 손길이 한 군데 두 군데 묻어 있었다는 사실.

어느 정도 일을 안답시고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다가도 선임 선생님의 눈길 한 번이면 단 번에 오류가 파악되는 그런 일들. 그런 게 부지기수다. 병원을 돌아가게 하는 진짜 인력은 이 사람들이다. 비록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중간년차 로 불리는 경험 빵빵한 간호사들에 병원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신규의 퇴사율을 낮추기 위해서 온갖 대안을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진짜로 환자를 보는 중간년차에게는 위로와 포상이 좀 부족하다는 개인적인 의견이다. 병원의 입장으로는 월급을 준다 하겠지만. 신규한테는 월급 안주나? 그런 생각도 든다. 그 예로 한 가지 예를 든다면 트레이닝을 들 수 있다. 


중간년차는 어느 정도 병원 일도 빠삭하게 알고 간호업무수행능력도 월등하기 때문에 활용도가 매우 많다. 그리고 그 때문에 환자를 보는 것 외에도 여러 업무들을 부여받게 되는 데 그 중 하나가 트레이닝이 되겠다. 나도 해보기 전 까지는 몰랐다. 트레이닝이 이렇게 스트레스받고 소모적인 일일 줄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꽤 신경 쓰이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어떻게 가르치냐에 따라서 상대방이 추후에 적응을 하기 쉬워지냐 어려워지냐 그런 차이가 생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신경을 쓰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트레이닝이 간호의 특성상 근무 시간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일과 교육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혼자 일해도 신경을 쓸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설명을 하면서 이해를 시켜가면서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교육을 하는 와중에 차팅을 넣고 (차팅도 가르쳐야 한다.) 전산을 정리하고(이것도 가르쳐야 한다.) Suction을 하고(이것도 가르쳐야 한다.) V/S 확인하고 노티 하고, 액팅 하고 (가르쳐야 한다.) 

자판기 사용법을 가르치면서 캔커피 사 먹을 때와 내가 그냥 캔커피 하나 자판기에서 뽑을 때의 그 속도 차이. 

결국 혼자 해도 밀릴까 말까 아슬아슬했던 근무는 트레이닝이 더해지면서 밀리게 되고 교대근무의 특성상 업무의 밀림 현상은 나의 다음 듀티에게 피해가 직접적이다. 여기서 2차 스트레스. 

남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아서 남은 일을 정리하는 데 그때도 트레이닝을 하게 된다. 결국 일은 연장되고 연장된다. 

비단 일이 남아서가 아니더라도 업무시간 도중에는 도저히 설명을 할 수 없었지만 업무에서 손을 떼고 난 이후에는 짬이 나서 듀티 시간이 끝나더라도 컴퓨터에 나란히 앉아 교육을 진행하게 되는데 거의 한 시간은 잡아먹게 된다. 그리고 보통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이 시간은 무료 봉사시간이다. 연장근무를 넣으라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다들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그래서 교육은 몇 주 아니면 한 달 이렇게 나눠하기는 하지만 두 달 힘들게 트레이닝을 시켰던 동료가 받았던 트레이닝비는 이십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하루에 몇 천 원 꼴이었다. (병원 바이 병원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말한다.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할 만큼 의미가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나의 프리셉티가 독립을 해서 잘하든 못하든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 하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생긴다. 

프리셉터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그 사람의 성격 이런 것을 떠나 신규가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신경 써서 전반적으로 교육을 도맡아 해 주는 사람이 프리셉티이다. 그래서 신규가 처음 만나는 프리셉터가 중요한 것이다. 


어쩔 때는 프리셉터를 맡을 사람이 도무지 없다고, 저번 달에 프리셉터를 했던 사람이 이번 달에 연속으로 교육을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라면 하는 거지만 참 수고해주신다는 그런 위로의 제스처 그거라도 있으면 참 힘이 날 텐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병원 일에 지치고 듀티 표에 지치고 지칠 대로 지친 만능 엔터테이너 같은 선임 선생님들은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된다. 퇴사를.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내가 퇴사한다고 여기는 아까워하지도 않겠지. 어차피 신규 많으니까. 


나는 그들이 있기에 일할 때마다 늘 든든하다. 무서울 때는 무섭고 잔소리 비슷한 말을 하실 땐 조금....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 마음가짐은 고마움이다. 이렇게 병원은 아웃 오브 안중임에도 할당량 이외의 일에도 기꺼이 마음을 쓰는 것이. 내 자잘한 실수들에 관심을 가져주실 만큼 내게 신경을 써 주고 있단 사실이. 내가 뭔가 성가신 일을 물고 오면 매우 성가셔하면서도 내가 처리할게 해주시는 그런 것들이 나는 너무나 고맙고 또 고맙다.

그래서 이 감사한 분들이 좀 더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이제까지 '간호'라는 애매한 개념의 틀에 묶여서 당연히 받아야 할 것들을 받지 못하고 일만 너무 많이 했다. 마치 가정주부에게 집에서만 있는 데 하는 게 뭐냐 하는 그런 억울한 시선 같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참 열심히 일할 사람들이다. 돈을 더 달라 그런 것도 아니고 그래 너희들 참 수고한다. 그런 뉘앙스의 뭐라도 있다면 선배들이 신바람 나서 일할 수 있는 병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열정적으로 교육하시고 좀 더 신나게 후배들의 뒤를 봐주실 거다. 그리고 그렇게 병원에서 하나의 단단한 안전망이 구축될 수 있을 테다. 


현재 병원들의 공통 현상으로는 중간이 없다는 거다. 신규가 잔뜩 있고 그 위로 5 ~ 10년 차까지의 실무진들이 뻥뻥 비어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최고참 선생님들이 포진. 

이 현상이 왜 그럴까.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간호사 집단이 당면해 있는 여러 문제를 풀 실마리가 담겨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더 선배님들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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