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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현 Nov 03. 2023

모과

 아파트 화단에 모과나무가 여러 개다. 모과는 가을 한가운데를 횡단하며 날마다 노랑을 키워가고 있다. 나뭇가지가 무게를 견딜 수 있나 싶게 모과는 크고 탐스럽다. 집 안에서 바라보는 모과는 나의 외출을 재촉하고 밖에서 바라보는 모과는 나를 유혹한다. 내 것이 아님에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을 한껏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아파트 안에 있는 모과는 엄연히 공동의 재산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깨쯤 따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말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하가나 핀잔을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사실 관리소 측에서 모과나 감을 수학해서 관리소 앞에 두고 필요한 사람 가져가라고 하면 나 같은 사람이 욕심을 자극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런데 저렇게 많고 예쁜 모과가 철이 지나면 누군가의 손에 수확되고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의 욕심을 키우는 것이다.


 나는 모과 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주방의 한쪽에 모과를 둠으로써 가을의 풍만함과 향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것이다. 늘 일정한 향을 뿜어대는 디퓨저나 향초에서 느끼지 못하는 자연의 향을 갖고 싶은 것이다. 모과의 향은 순간순간 슬쩍슬쩍 온다. 그래서 발을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하고 미소 짓게 한다. 그렇게 겨울의 가운데까지 가다 노인의 검버섯처럼 갈색 반점을 올리며 생을 다해간다. 나는 그런 모과의 속도가 좋다. 은은함과 느릿함을 동시에 가진 모과는 빡빡하고 빠른 나의 일상을 위로한다. 또 하나 매력적인 것은 모과의 생김새다. 아마 과일 중 가장 못생기지 않았나 싶다. 외모가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지금의 사회에 모과는 실격인 셈이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는 사람처럼 모과는 보면 볼수록 정이 간다. 나이 지긋한 중년 부인의 몸매를 연상케 함으로써 푸근함을 느끼게 해 준다. 젊음으로썬 절대 가질 수 없는 여유와 완숙한 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아름다운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그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알 게 된 것이리라. 모과는 미의 다양성을  일깨워주는 데 한몫을 하는 셈이다. 모과와 함께 가을을 지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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