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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현 Jan 03. 2024

피아노

 옷방 한구석에 피아노가 있다. 조각 하나 없는 단순하면서도 묵직한 피아노다. 그 피아노는 늘어나는 짐에 밀려 우리 집의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쉽게 옮기지도 못하는 무게와 덩치 때문에 구석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었다. 몇 번이고 없애야지 마음을 먹으면서도 없애지 질 않는다.


 IMF시절  금 모으기가 한참일 때 아이들의 돌반지 백일반지 등을 팔았다. 그러고도 조금의 돈을 보태서 이 피아노를 샀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 온 지 26년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피아노 연습이 목적이었다. 두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는 시기였기에 나는 큰 맘 먹고 피아노를 샀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피아노를 치지 않았고 피아노는 장식품이 되어갔다. 피아노 위에 가족들의 사진 액자를 올려 놓고 유행하는 장식품들을 올려놓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우리 집에 값어치 나가는 물건이란 별로 없었다. 아마도 가지고 있는 것 중 피아노가 제일 비싸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지금 피아노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때 들인 돈의 액수나 어렵게 마련한 마음 때문 만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피아노가 들어오던 날, 그 가득한 행복감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일종의 중산층의 상징물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속에 속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막연한 안정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시골 소녀의 어릴 적 꿈이었던 우리도 피아노 있는 집이 되었다. 그때쯤의 나는 음악을 아는 아이들로 키워야겠다는 교육관가지있었고 인간의 성장과정에 음악이 가져다주는 감성과 여유를 무한 신뢰 했다. 또한 피아노가 있는 것만으로 나의 문화적 갈증을 달래주는데 한몫을 했다. 피아노 악보를 사고 음악 관련 서적들을 샀다. 클래식을 들으려고 애썼고 그들의 이야기를 알려고 귀를 기울였다. 이런 모든 순간들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사치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그 작은 손으로 '엘리자를 위하여"라도 치면 나는 소파에 앉아 무한한 만족감을 느꼈다. 엄마로서의 순진함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그랬던 피아노가 어느 시기부터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피아노를 점점 치지 않았다. 한때는 내가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5~6년을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대중가요나 가곡 등을 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게 되었지만 이사를 하면서 멀어지게 됐다. 이사 와서 피아노는 아이의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안방으로 안방에서 창고 방으로 차츰 자리를 옮겨 앉게 되었다. 옷방 한구석을 차치한 피아노를 보면 늘고 병든 부모를 보듯 측은한 마음이 든다. 가끔 한 번씩 눌러보면 여전히 맑은 소리를 내는 피아노를 죽은 것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이 미안스러웠다.


 우리는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산다. 그 물건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오든 나와 동고동락하며 나를 이루는 것이 된다. 나는 피아노를 배우던 아이와 피아노를 배우던 나와 배아노를 포기하고  피아노를 안고 사는 사람을 지나 지금의 내가 됐다. 나를 늘 응원해 주는 부모처럼 한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바라봤을 피아노, 돌아보지 않는 자식을 원망하지 않는 부모처럼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먼지를 털고 닦고 쓰다듬으며 마음을 주고 아낀다. 내가  피아노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마음을 주는 일이었고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또한 내 젊은 치기와 열정에 대한 회한이며 추억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족 누구도 치지 않는 피아노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절대 버리지 못할 꿈의 상징 같은 것이었나 싶다


 피아노를 버리려고 중고점에 알아보았다. 살 때에 비하면 턱없는 액수를 말했고 가져가기만 해 폐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가져가란 소릴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아이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피아노를 배울 때쯤 물려주겠다고 말하곤 했다. 아마도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무게감 있는 저 덩치를 끌어안고 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말한다 '이것들아 빨리 분가해라' 그러면 피아노를 방으로 모셔와 귀하게 대접해 줄 것이다. 아주 가끔 피아노를 치거나 영 안 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오랜 친구와 이야기하듯 피아노를 쓰다듬을 것이다. 그리고  젊었을 때의 나를 회상하며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행복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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