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이다. 카페 유리창에 달팽이 한 마리가 붙어 있다. 아침에 온 비로 대지가 촉촉한 탓인지 달팽이 한 마리가 유리창에 남아 모험을 즐기고 있다. 자신의 서식지를 벗어나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고 탐험일 것이다. 달팽이는 비 오는 날을 기다려 세상 구경을 나온 것이다. 나무 이파리와 풀 이파리 등을 거쳐 시멘트 바닥을 살살 기어서 올라왔을 것이다. 그러다 몸에 닿는 감촉이 너무 미끈하고 차가워 기분이 좋아졌을 거란 예상을 해본다. 이렇게 좋은 곳이 있구나 싶은 생각과 기분 좋은 감촉 때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유리창을 기어오르고 또 기어올랐으리라. 내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자리를 옮겨 앉는 달팽이가 신기했다. 한참을 지나보니 달팽이는 유리창 맨 끝에까지 올라가 있었다. 달팽이가 그렇게 빠른 속도를 지녔는지에 대한 의문이 처음으로 생겼다. 내가 신기해하는 것을 알았는지 달팽이는 한층 더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검은 섀시로 나누어진 유리창을 건너 다음 유리창을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리창 4곳을 모두 휘젓고 다닌 달팽이는 아래로 내려오더니 한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있었다. 너무 여행을 즐긴 탓인지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다 소비한 듯했다. 나는 달팽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도 날씨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고 낯선 곳으로 외출하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 이날 달팽이는 비가 내릴 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렸을 것이다. 평소에 보아두었던 곳에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오리라는 다짐을 했고 마침내 그 시간이 주어졌을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을 최대한 길게 빼서 주변의 사물들을 관찰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나는 조금 웃음이 났다. 이건 순전히 내 상황을 달팽이에게 얹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나 눈이 오면 마음이 평상시와는 다르다. 센티해질 대로 센티해져 어디 창 넓은 카페에 앉아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고 싶다. 기차를 타고 아무 역이나 내려 낯선 풍경을 두리번거리다 허기진 배를 라면으로 채우고 모르는 길을 조용히 걷고 싶기도 하다. 아마도 달팽이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달팽이 입장에서 그런 외출이라면 인간 세계를 구경하고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일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표본이 되어 달팽이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자세를 가다듬고 매무새를 고치고 눈을 크게 뜨고 달팽이를 마주 봤다. '나는 인간 여자이고 나이가 많고 시를 쓰고 있어' 이런 소개를 하며 살짝 미소도 지어 보였다
내가 달팽이를 관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작은 연체동물에 관심도 없었거니와 동물을 자세히 관찰할 기회도 없었다. 이날은 달팽이도 나도 한가한 정오를 즐기고 있었고 한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자세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런 게 자연과의 교감이라면 나는 그날 분명 달팽이와 교감했다고 생각한다. 달팽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후 기분이 좋았고 그 기분을 어떤 형식이든 글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나에게 에너지를 주었고 작은 생명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해줬다.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갖고 기쁨을 얻는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겉보다는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조금 더 따듯한 인간으로 나이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알아채고 기쁨을 얻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