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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르헨 Oct 01. 2023

저는 고객센터에 다닙니다.

2.  사람들과 만나는 사람들이 있는 곳

-반갑습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먼저 본인확인 후에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000 고객님 본인되시나요?


9시 1분전.

업무 스타트를 앞둔 센터는 다소 부산하다. 9시가 되기전에 물도 가져와야 하고 헤드셋도 써야 하고 고객 전화가 정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대기>를 해두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9시로 찰칵, 시간이 바뀌자마자 ARS로 연결되는 고객들의 전화와 채팅이 실시간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센터마다 근무시간이 다르긴 하나, 통상적으로 9 TO 6를 칼처럼 지키는 것이 고객센터의 미덕(?)아닌 미덕이다. 관리자들은 상담프로그램 로그인상태와 스탠바이를 개별로 확인하여 정상 응대가 가능한지 확인하고 오류가 있는 좌석의 상담사를 빠르게 공유하여 해당 좌석의 오류를 조치하여 업무 정상수행 여부를 미리 체크해 두어야 한다.


십수년전 고객센터를 콜센터라고만 불렀던 몇년전, 언론에서 크게 이슈가 되었던 고객센터 인턴직원의 죽음이 영화화 되었다.

실적이 모자라 늦은 밤까지 전화를 돌리고 쌍욕이 날아와 박혀도 아무말도 하지 못하던 19살의 아이는 결국 저수지로 걸어들어간다. 열아홉살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어른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고, 조의를 표하기 전에 책임을 피하기에 급급하다.

왜일까.

그들도, 그렇게 살아남았기 때문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했다.

지금도 그때도, 그 센터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따라 방식은 다르지만 법적인 사항은 모두 준수해야 한다.

2018년 이후로 산업안전보건법 제정이후 감정노동자에게 고객이 욕을 하게 두지 않고, 근기법에서는 원래 만 18세 미만에게 7시간 이상 초과근로를 시키지 않는다. 아니..원래 그건 모두 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준수하고 일을 하는데, 아무리 실습생이라 한대도 저리 도구로만 “사용”하다니.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멍하고 화가 났다. 현실과 너무 다른 이야기로, 고객서비스 업무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을 신파처럼 끌어내고 있었다.

그 영화에서 정점은 고객센터의 비인간적 현실이 아니라, 그렇게 불법적으로 운영을 하는 일부 아웃소싱업체의 문제점과 관리소홀의 학교여야 했다. 그 영화는, 올무에 걸려 피가 철철 나도록 끌려다니는 짐승처럼 고객센터 직원들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니 모두 싸잡아 동정하라며 문제제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고객센터는, 그리고 내가 겪어왔던 고객센터는 적어도 그런 곳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이 정의감이라니.


여자들이 많이 모이다보니, 세상 모든 사연은 여기 다 모였다. 싱글맘정도는 기본이고, 부모님 부양하고 남편도 부양하는 팀원들부터, 정말 온갖 내용의 별별 사연이 다 있다.

그러나 하루 8시간 고된 업무를 유선으로 처리하면서도 화내는 팀원들보다는 빨리 업무를 처리해줘야 하려는 팀원들이 훨씬 많다면 믿겠는가.

가끔 1시간씩 고객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직원들도 있고, 억울하다며 우는 고객의 하소연을 공감하며 들어주는 직원들도 있다. 물론, 가끔 억지쓰며 험한 소리하는 고객이 없는게 아니니 사람인지라 짜증도 나겠지만 그래도 대부분 고객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팀원들이 가끔은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저걸 참는다고..?


내 가족과 내 아이들의 생계를 위하여,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오늘도 9시부터 보이지 않는 고객과 만나는 이 사람들은 어쩌면 우리의 건너건너 지인인지도, 알고 있는 누군가의 엄마이며 누이인지도.


그러니 가끔은 이 분들의 당연한 노고에 우리 모두 온기 담아 가벼운 인사라도 함께 건네면 어떨까.


- 다른 도움 드릴 사항은 없으실까요? 오늘도 행복한 오후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ㅇㅇㅇ이었습니다.


전화기 너머 그곳에,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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