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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르헨 Apr 15. 2024

저는 고객센터에 다닙니다.

8. 내 이야기를 들어봐! 

- 고객님 죄송하지만 말씀주신 내용은 고객센터에서 도움 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고객센터의 전화번호가 비슷하다 보니 다른 회사의 문의를 받는 경우도 있다. 

1588, 1645, 1800 기타등등.. 이런 번호로 시작하다보니 고객들이 헷갈리는것도 당연하지 않나 싶은데 생각보다 잘못 알고 전화를 주시는 분들도 꽤 있는 편.

또한 고객센터에 질의나 업무처리 요청 말고, 

가끔... 아주 가끔 하소연을 하려는 분들이 연락을 주시기도 한다. 


몇년 전이었다. 

D사의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는데, 전화를 걸기만 하면 한시간 반씩 끊지 않으시는 70대의 고객분이 하루 수차례 전화를 거셨다. 

4번째인가 5번째 팀원들이 응대를 하려는데 고령의 고객님은 자꾸 똑같은 말 하는거 귀찮다며 니네 높은 사람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하셨고,  "높은" 사람은 아니어도 "얼레벌레 높은" 내가 전화를 다시 하게 되었다. 

- 높은 사람이야?

- 아주 높은 사람은 아니지만 요청하시는 내용 제가 해결해 드릴수는 있습니다. 

- 그래? 그럼 내 이야기나 좀 들어봐. 


그로부터 90여분 이상 이어진 고객님의 문의 사항.

자기가 물어보는걸 해결하지 못하는건 알지만 살아온 인생이 너무 고단한데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차라리 전화를 오래 해도 계속 답을 해주는 고객센터가 어떨까 싶어서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을 거치다 보니 그것도 미안하여, 차라리 높은 사람은 시간이 좀 많지 않나 싶어서 바꿔 달라 했다며 미안하다 하시는데 그게 그리 미안하실 일은 아닌것을. 

엄마보다 연배가 높은 고객님의 살아온 시간들을 들으며 감탄도 하고 공감도 하다 보니 거의 100여분이 지났는데 이제 다 속이 시원하다고 기나긴 하소연을 마치신 고객님은 허허 웃으며 시간 뺏어서 미안하지만 다음에 이 회사 상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 소개할테니 이름을 대라고 하셨다. 

아무개 때문에 무조건 여기 가입하라고 하시겠다며 계속 내 이름을 물으셨다.


-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000이지만, 주변분들에게 좋은 말씀은 해주시구 강매는 안하셔도 됩니다 ^^ 

 

늘 건강하시고 또 저랑 말씀 나누시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전화 주시라고하고 종료하면서 왠지 마음 한구석이 촉촉해지는 느낌이 들었달까. 

그 이후로, 퇴사할때까지 그 고객님의 안부가 궁금했고 또 이야기 할 사람이 필요하진 않으신지 

건강하신지 가끔 궁금했다. 


때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전화를 하시는 분들도 있다.

누군가는 하소연이라 하고, 누군가는 대화라고 하지만 

업무처리를 하고,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좋은 일에 같이 기뻐해드리고, 

AI가 대신 할 수 없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곳. 


나는 고객센터에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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