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기장
겨울옷을 정리하다 창고에서 일기장을 발견했다. 92년도에 멈춰있는 낡은 일기장, 그 속에서 24살의 엄마를 만났다.
올해는 양띠 해라며 결코 얌전히 살지 않겠다던 엄마는 야근이 잦았다. 당시에는 토요일 출근도 당연했던 시절이기에 주말마저 자유롭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간간이 이대 앞에서 파마를 하고 기분전환도 할 줄 아는 멋진 친구였다.
얼핏 보면 나의 24살과 엄청나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어깨가 좀 무거웠다. 엄마는 여유롭다고 보기는 힘든 집의 맏딸이었다. 본인 월급으로 이모의 학자금을 충당하기도 했고 삼촌의 보험료를 내기도 했다. ‘당장 10만 원이 있다면 바로 사고 싶은 옷을 살 텐데’ 라는 좀 마음 아픈 구절도 있더라. 그런 점은 당시 24살의 엄마를 확실히 조숙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였는지 한 쪽 구석에는 가정에 대한 열망을 비췄다. 따듯한 가정이 인격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있더랬다. 본인의 가정은 화원처럼 꾸미겠다는 알찬 포부도 적혀있다.
엄마의 꿈은 이뤄졌을까? 1명의 구성원으로서 주기적으로 여행을 가고 명절마다 똘똘 뭉쳐 다니는 우리 가족은 확실히 따스하고 든든하다. 이 안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마음 한 편에는 90년대의 한 친구가 조금 안타깝다. 타임머신이 아직 세상에 없다는 것이 사뭇 아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