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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Jan 27. 2024

수수께끼를 살아가는 청춘의 분노 -1-

영화《버닝》(이창동, 2018)

 혼란스러운 세상 속 방황의 끝은 해답인가, 분노인가. 혹은 분노가 그 해답인가? 2018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 유아인, 전종서, 스티브 연이 호흡을 맞추었다. 수수께끼 같은 세계 속 청춘이 겪는 방황과 분노를 다양한 메타포를 사용해 담아냈으며,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진 세 인물, 종수(유아인 役)와 해미(전종서 役), 벤(스티븐 연 役)이 만나 벌어지는 긴장감을 건조하고 담백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그려낸다. 본 영화는 관객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에서 열려 있으며, 그렇기에 어느 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불명확성 덕분에 이 영화는 삶의 수수께끼 같은 모호하고 기이한 측면을 잘 담아낼 수 있었으며, 그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의 방황과 분노를 효과적으로 포착했다.


 <헛간을 태우다>, <헛간 타오르다>, 그리고 《버닝》

 영화 제목인 ‘버닝(Burning)’은 ‘타고 있는’이라는 뜻으로, 벤에 의해 타고 있는 비닐하우스와 분노로 타고 있는 종수의 심리를 모두 관통하고 있다. 이러한 제목은 본 영화가 영향을 받은 두 소설, <헛간을 태우다>와 <헛간 타오르다>도 하나로 묶는다.


 본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하는 만큼, 인물 구성과 서사 흐름, 사용되는 상징에서 많은 부분 공통점을 가진다. 종수, 해미, 벤은 소설에서 등장한 ‘나’, ‘그’, ‘그녀’의 변주이다. 영화 속 해미와 벤의 이미지는 소설 인물과 유사한 틀을 가지나, 40대의 기혼 소설작가로 묘사되는 소설 속 ‘나’와는 달리 종수는 아직 등단하지 못한 20대의 작가 지망생이다. 영화는 변주된 주인공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건을 통해 미스터리한 세상과 분노에 찬 삶을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한편, 종수와 벤이 만나서 방화(헛간 방화가 비닐하우스 방화로 변주되었다)에 대해 말한 뒤 해미가 실종되는 사건은 소설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으나 후에 이어지는 내용 및 결말은 차이가 있다. 외에도 영화만의 주제 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인물과 사건의 여러 디테일이 추가되어 영화만의 완성도를 높인다. 소설에도 나타나는 ‘귤껍질 까기’의 메타포가 영화만의 상징인 ‘고양이’와 ‘우물’을 통해 의미가 확장된 것이 대표적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소설 <헛간 타오르다>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타인의 헛간을 태우는 ‘소년’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이에 관해 감독은 “그 아버지의 분노가 아들의 분노로 옮겨가는 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보다 가까울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종수는 위 소설에서 나오는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있다. 종수는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아버지를 벤에게 언급한다. “가슴속에 항상 분노가 있어서 그게 폭탄처럼 터져요.” 그러한 아버지의 손에 자란 종수 역시 감독의 인터뷰 내용처럼 아비의 분노를 전유받았다. 벤에게 비닐하우스 방화에 대해 들은 뒤 종수가 꾼 꿈에서, 어린 종수가 불타는 비닐하우스를 보며 얼핏 미소를 짓는 장면을 통해 종수 내면의 화(火)가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일까, 종수는 포크너의 소설을 읽으며 동질감을 느낀다. 한편, 이것 외에도 소설 농장주인 기득권 세력과 소작농인 비기득권 세력의 갈등을 소재로 다루는데, 이러한 측면도 벤과 종수의 갈등으로 변주되어 영화상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하루키의 세계에 살고 있는 젊은 포크너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살펴보았듯 두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은 흔적이 영화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의 영상화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청춘의 모습을 담아내었으며 관객에게 공감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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