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형 Sep 04. 2023

교사들의 '서식지'를 함부로
침범하면 아이들은 온전할까

오늘은 서울 강남구 서이초등학교 교살에서 스물세 살 꽃다운 나이로 목숨을 끊은 여선생님의 49재가 있는 날이다. 토요일인 그제 오후엔 검은색 옷차림을 한 전국 교사 20여만 명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 선생님의 죽음 후 일곱 번째 집회를 열고 “교사도 사람이다”, “아동복지법 개정하라” 목놓아 외쳤다. 혹은 눈물을 훔치며 혹은 결연하게 혹은……. 


7월 첫 집회 때 내 가슴을 직통으로 찌른 교사들의 한결같은 요구는 ‘교사 생존권 보장’이었다. 나는 정말 놀랐다. 교사 생존권 보장이라니? 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말이었다. 농민 생존권 보장, 노동자 생존권 보장은 수도 없이 들어봤어도!     


'아동복지법'이 교사를 죽음으로까지 내몰 줄이야    


30년도 더 전인 1989년 교사들이 정부의 혹독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전국교직원노동조합) 건설을 결행했을 때 그 교사들이 한 목소리로 다짐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교육을 바꾸어 아이들을 살려내자’였다. 반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인 입시경쟁지상주의의 그늘에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이 해마다 수십 명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그러니까 아이들의 ‘생존권’을 지켜야 했기에 1500여 명의 교사들은 해직을 감내했고 그랬기에 그들 곁에는 그들의 충심과 고난을 함께 하려는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있었다.     

그로써 오랜 세월 학교에 만연하던 상명하복, 관료주의, 불통, 반교육적 비리, 학생들에게 가해지던 일부 교사들의 그악한 폭력 등은 점차 눈에 띄게 사라졌다. 학생인권조례도 우여곡절을 거치긴 해도 시도 교육청별로 제정되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 학교의 다른 한편에서는 무슨 일이 났던 걸까?

선의로 만들었을 아동복지법이란 것이 학교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마비시키고 끝내 교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날까지 올 줄이야 학교 바깥의 어느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나도 정말 몰랐다.   

  

북극곰의 눈물, 교사의 눈물


2023년 ‘생존권 보장’을 절규하는 교사들을 보며 2008년 MBC 방송이 만든 환경 다큐 <북극의 눈물>의 북극곰을 떠올렸다. 기후변화로(다시 말해 우리 인간의 무분별한 이기심과 과욕 때문에) 서식지인 빙하를 점점 잃게 됨으로써 생존 자체가 위협받게 된 북극곰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물어본다. 교사들의 서식지는 어디인가. 그것은 학교다. 교사의 자리다. 교육이 가능한 공간이다. 그 누구도 교사의 서식지를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 서식지는 교사들의 최소한의 생존의 터전이며 그곳에는 부모에게도 교사에게도 꼭 같이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묻건대, 교사들의 서식처를 함부로 침범하면 아이들은 온전하게 자랄 수 있을까?


교사의 자리, 교육의 자리, 그 서식처에는 아이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 서식지에서 아이들은 부모가 아니라 교사와 함께, 배우고 성장한다. 가정과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남으로써 비로소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혼자만 잘난 게 아니라 다양한 친구들이 있기에 내가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인내와 배려와 양보의 미덕도 배운다. 이를 통해 좌절의 고통이 동반되기 마련인 성장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배양하고 마침내는 내 삶의 어엿한 주인,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기쁨도 누린다.


어떤 국가 권력도, 사회도, 법도, 부모도 거기에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말하게 되는 것은 서식지의 진실이 바로 이러하기 때문이다. 그 서식지의 문은 한 번도 닫혀 있은 적이 없다. 하지만 활짝 열려있다고 해서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은 우리네 가정의 집이나 학교라는 서식처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또한 말했다. ‘교사도 사람이다’ 나는 이 말에도 눈물이 났다. 교사도 사람이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사람의 처절한 인간 선언으로서 그것은 교사도 사람이기에 실수도 하고 오류도 범할 수 있다는 것,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에 교사도 늘 정진하고 배워나가고자 한다는 것,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며 웃는 아이들을 보면 교사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좀 알아줬으면 한다는 것 아니었던가?


오늘 49재 행사를 놓고 정부(교육부)와 교육청은 거기에 참여하는 교사에 ‘엄정대처’하겠다고 천명했다. 아동복지법 개정 등 필요한 조치는 우리가 할 터이니 교사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도 했다 한다.     


'두려움을 나아갈 용기로, 연대를 공교육의 희망으로' 


빙하라는 서식지가 점점 파괴되고 좁아지는 동안 북극곰은 그야말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선생님들은 북극곰처럼 순하고 착하기는 해도 이번에는 결코 가만히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린 경험으로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서이초 선생님에 이어 며칠 전엔 두 분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또 생을 마감했다. 명복을 빌기조차 부끄럽고 죄스런 마음은 나만의 것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오늘 오후 5시엔 부산시 교육청에서도 교사들의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거기에 가서 내 작은 마음이라도 보태고자 한다.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아이들을 살리고 교육을 살리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길은 그러한 아름다운 선생님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어 왔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말씀'이라는 빛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