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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Jul 10. 2021

붕어빵

미술치료사가 되어 만난 첫번째 인연

목련꽃이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켤 때쯤 난 경인이를 만났다. 단발머리에 통통한 체구를 한 경인이는 시선을 어느 한 군데 두지 못한 채 먼 곳을 응시하는 듯 초점 잃은 눈빛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경인이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아이인 듯 했지만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경인이 누구 딸이야?”

“안현수 선생님 딸”

“그래 선생님 막내딸이야 그치”

“네!”     


난 경인이를 볼 때마다 하루에 몇 번씩 주입 시키듯 묻곤 했다. 우리 곁을 지나던 선생님들도 한결같이 “진짜 선생님 딸인 줄 알겠어요.”라는 말을 내뱉으며 지나쳤다. 아이들 역시 “정말 선생님이 경인이 엄마에요?” 라고 신기한 듯 물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나는 경인이의 손을 잡고 학교 인근의 한적한 공원을 찾았다. 아담한 벤치에 내 허벅지를 베게 삼아 파란 하늘을 가슴으로 안고 바로 누어 손을 마구 털어 댄다. 늘 하는 상동행동이다.     


오늘 날씨 참 좋다 그치?

....

경인이는 어떤 색이 좋아?

....

아무런 대답이 없다.     


우린 서로 간에 상호작용은 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나는 경인이의 감정 상태를 잘 읽어 낼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내 가슴속으로 얼굴을 묻고 내 손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둔다. 이건 안아 달라는 신호이다. 꼭 안아 준다. 내 두 손을 자신의 귀에 가져다 댄다. 이건 듣고 싶지 않은 소리로부터 자신을 막아 달라는 신호이다. 템플 그랜딘이 불안을 느낄 때마다 자신이 만든 압착기에 몸을 넣어 두고 안정을 찾은 것처럼 말이다.      


자폐인의 주된 정서는 불안이다. 경인이는 불안 중에서도 유독 청각에 예민한 아이였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친구들이 웅성대는 소리, 호루라기 부는 소리, 낯선 소리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괴성을 지르고, 펄쩍 뛸 듯이 울음을 터트리며 과한 행동을 보일 때면 나는 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으로 내 두 손을 경인이의 두 귀를 꼭 막아준다.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분이 좋을 때면 경인이는 내 품으로 달려와 덥석 안긴다. 그리고 바로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익숙하게 맡아 본 냄새라는 걸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안심한 듯 큰 소리를 내며 웃는다. 그렇게 난 경인이의 든든한 보호자처럼, 때론 친구처럼, 엄마와 딸처럼 지냈다.      


난 경인이랑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점 세 개를 찍어 주고 점과 점을 연결하여 세모 모양이 된다는 것을 시현 한다. 점 세 개를 찍어 주면 경인이는 비뚤비뚤한 선을 연결하여 세모를 그려냈다. 네모도 그렇게 그리면서 익혀 갔다. 스스로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그려내는데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릴 만큼 경인이는 저기능 자폐아였다. 자신의 이름을 쓰게 되고, 숫자 10까지 익히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장애아동의 유형별 특성에 대해 알고 싶었고, 특수교육에 관심도 많았다. 좀 더 젊었을 때 특수교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 특수교사 되었을지도 모른다. 장애 아이들에게는 교육과 치료가 밀착되어 있기에 교육적 방법을 통한 치료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치료사로 활동하기 이전에 나의 한계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특수학급에서 2년간 보조교사로 일을 하면서 장애아동들의 다양한 특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때 나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아이가 경인이었다.     


창·체 시간에 난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 수업을 했다. 특수교사는 나에게 아이들과 함께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우린 학예회를 앞두고 커다란 전지에 협동화를 그렸다. 지적장애, ADHD, 의사소통 장애, 자폐 또는 복합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경계선 지적장애였던 은영이는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어 그림을 곧잘 그렸다. 은영이가 커다란 형태를 잡아주면 다른 아이들은 곳곳에 자리를 잡고 나름의 알 수 없는 형태를 그려냈다. 물론, 아이들은 짧은 집중력으로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이상 행동을 보이기가 일쑤였고 그림은 난해한 추상화가 되어 버렸다. 한곳에 네모만 수없이 반복해 그리는 아이, 위아래 선만 계속 긋는 아이. 장애 아이들의 특성이 그림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림은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특수교사는 학예회 때 전시할 그림인데 그냥 둬도 되냐며 야단이었다. 나는 특수교사를 안심시키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그림을 은영이와 민수와 함께 다듬는 작업을 했다. 은영이와 민수가 그림을 마무리하면서 개성 있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협동화는 재미있는 작품으로 학예회 때 부모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들의 좋은 평가를 받으며 무사히 행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내 작업으로 옮기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기린’은 선한 동물이다. 어떤 사나운 맹수도 기린의 순한 눈과 긴 목 그리고 가느다란 팔, 다리를 보면 헤치지 않을 것만 같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눈은 슬퍼 보인다. 나는 그 눈이 싫어 아예 그리지 않았다.  이 아이들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기린의 눈을 가진 순수하고 선한 아이들. 그러나 이 아이들을 지켜보는 나의 시선은 그다지 편치만 않다. ‘장애아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세상의 편견에 부딪쳐 아이들이 잘 이겨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혹여 치료시기를 놓쳐 가정에서 아이를 양육하기 힘든 상황에 내몰려 장애시설로 가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컸다. 아이들이 오랫동안 가족들과 함께 수 있는 삶이 되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경은이를 보던 날 나는 경은이를 데리고 붕어빵가게로 갔다. 혼자서 붕어빵 10개를 모두 먹어 버릴 만큼 붕어빵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난 경은이에게 “잘 지내” 라며 짧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 없이 붕어빵만을 열심히 먹을 뿐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헤어졌다.     


가끔 생각난다

경인이는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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