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한 친구와 이별했다. 일본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이름은 유키(ゆき)다. 한국어로는 눈을 뜻하는 일본어 유키. 나는 내 친구를 통해 유키를 소개받게 되었다. 눈처럼 무해하고 웃는 게 귀여운 유키는 나의 첫 외국인 친구였다. 유키라는 이름은 게임 닉네임을 지을 때든, 네이버 카페나 블로그 별명을 설정할 때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생경한 것이라 신기했다. 이름은 참 이상하다. 유키와 얼굴을 마주할 때면 항상 기분이 이상해지니까.
어떤 단어를 잘 모를 때, 혹은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 싶을 때, 나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가장 자주 사용한다. (모든 사전이 전부 그렇겠지만) 이 사전에서는 공인된 단어의 용법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모든 단어들은 이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이름을 풀이하는 것으로부터. 사전에 사전을 검색해도 사전의 의미가 나오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이름, 소위 ‘본명’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대개는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지어주시고 간혹 작명소에서 주는 이름 중 하나를 고른다고도 한다. 나는 내가 받은 이름이 마음에 든다. 내 이름 세 글자 중에 가운데에 오는 것이 선(善)인데, 이 ‘선’이라는 한자는 사람의 이름에 있어서 아주 흔한 글자다. 주변에 ‘선’이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거의 다 선(善)이더라.
그러나 이름 자체보다 이름을 해석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善 말고 sun이 좋다. 나는 착하지 않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해가 좋다. 뜨겁고 빛이 나고 동그래. 지는 순간에도 항상 머리 위에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어. 나는 언젠가부터 내 이름을 한자 대신 영어로 풀이하기 시작했고, 면접용 자기소개서를 쓸 때엔 어김없이 “저는 태양 같은 사람입니다.” 라고 써내려갔다. 그렇게 쓴 자기소개서로 합격만 했다.
유키와 이별했던 그 주에, 나는 다른 일로 많이 울었었다. 조금 괜찮아질 것 같으면 다시 울컥해서 몸을 이리저리 많이 뒤집어 누웠다. 손가락, 손등, 팔, 잠옷, 베개, 이불의 순서로 눈물을 닦았다. 짝꿍이 울지 말라고 다독여주었다. 울지 마, 울지 마…… 잠깐 더 서러워졌고 그 서러움은 잔뜩 몸을 부풀린 괴물이 되었다. 아무 이유도 덧붙이지 않은 ‘울지 마’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괴물은 보란 듯이 더 크게 울었다. 그래서 나는 착하지 않다고 했잖아.
다 울고 나서도 짝꿍에게 미안하지는 않았다. 눈물이 전부 귀로 흘러들어가서 간지러울 뿐이었다. 짝꿍은 나를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내가 너무 서럽게 울어서 가슴이 우리하다고. 그 한 마디에 마지막으로 쏟아지려던 눈물이 뚝! 했다. 우리하다? 우리하다가 뭐야. 우리? 내가 아는 우리는 우리랑 we랑 私たち가 전부인데. 우리하다는 가슴이 아프고 욱신거린다는 거야. 뭐야, 그게. 이름 진짜 이상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말이 사실인지 궁금해서 사전에 검색을 했다. 경상도 지방의 사투리라고 하길래 경상도에 사는 친구들에게도 카카오톡으로 물어봤다. 우리하다는 정말로 존재했다. 우리하다,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잠을 청했다. 가슴이 살짝 뛰기 시작했다. 수면제를 늦게 먹어서 그런가 싶었다.
짝꿍이 부산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계속 생각했다. 우리하다라니! 내가 아는 우리는 대명사밖에 없었는데 동사로도 존재했다니. 그것도 ‘우리’와는 다른 의미로. 영어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 공부를 하다 보면 처음 보는 단어를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이렇게 재밌다고 느낀 순간은 처음이었다. 이름에게 새로운 마음을 품기 시작한 것을 핑계 삼아 단어장도 여러 개 사 버렸다. 매일 나에게 찾아올 새 이름들을 위해 가방에 항상 넣어 다니고 있다.
우리, We, 私たち. 이것은 우리라는 이름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이다. 내가 할 줄 아는 언어는 저 세 개가 끝이다. 내가 정의내릴 수 있는 ‘우리’의 개수는 세 가지인 것이다. 이 정도의 ‘우리’면 충분하다고, 더는 아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 안의 사람과 아주 멀리 떨어져 이별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유키가 가 버린다. 아니다. 유키는 집에 가는 거니까 돌아간다고 해야겠다.
유키와 지하철역에서 헤어질 때 갑작스럽게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이번 겨울에는 일본에 꼭 갈게. 정말로? 응! 이번엔 내가 일본으로 갈게. 나에게 유키를 소개해준 친구와 나는 유키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유키는 우리가 준 선물을 안고 아주 높은 계단을 올라갔고 우리는 최대한 납작하게 무릎을 굽힌 자세로 배웅했다.
나와 친구도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바로 지하철역에서 헤어졌다. 집에 가는 길에 생각난 건데, 이 친구는 나에게 2년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삿포로의 눈을 보기 전까지는 우리 같이 살아 있자고. 정말 문득 떠올랐다. 우리는 왜 그런 말을 서로 주고 받았을까. 겨우 눈이 뭐라고.
친구는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서 호들갑 떨지 말라고 그랬다. 집에 돌아와서 유키가 보내준 사진을 확인했다. 잠깐 씻고 나온 사이에 유키는 나에게 비건 립밤을 선물로 보낸 상태였다. 네가 사준 룸 스프레이를 뿌릴 때마다 선아가 보고 싶을 거야. 짝꿍이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가슴이 조금 우리했다.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그런가 싶었다.
유키야, 계단 조심해야 돼.
난 유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고 유키는 성큼성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