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아홉 살 아이의 가을(2024.09-2024.11)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학교에서 리코더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는 엄마들끼리 모여 얘기를 하다가 한 엄마가 말했다. “리코더까지 선생님을 붙여야 하나?” 우스갯소리였고 실제로도 소리 내어 웃었지만 속으로는 웃지 않았다. 이제는 모든 것을 잘해야 하는구나. 잘하지 못하더라도 평균 정도는 해야 엄마들 마음이 놓이는구나. 운동 신경이 없는 아이를 줄넘기 학원에 보내는 이유는 줄넘기를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이너스 100인 줄넘기 실력을 0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곤 했다. 한번 실패하면 고래고래 소리부터 지르는 까탈스러운 아이를 위한 나름의 준비라는 말은 변명에 가깝다. 나 또한 다른 아이들이 훌쩍훌쩍 줄넘기를 할 때, 내 아이가 아무것도 못해 가만히 서 있는 꼴을 견디지 못하는 극성스러운 엄마니까.
여름 방학 직전, 사고력을 가르치는 수학 학원에서 레벨 테스트를 봤다. 학원 이름 끝머리엔 영재교육원이란 타이틀이 붙은 곳이었다. 레벨 테스트를 본 뒤 원장 선생님과 상담을 하던 중, 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감추지 못했다. “아이가 숫자 감각이 있네요. 레벨 테스트 하는 중에 제가 지켜봤는데 보통 아이들은 숫자를 써가면서 계산을 하는데 이 아이는 머리로 그냥 풀더라고요.” “이 문제는 틀렸지만 그래도 정답에 근접했어요. 올해 이 지역에서 이 문제를 푼 아이는 딱 두 명이었어요.” 이 같은 칭찬이 몇 번 오갔을 것이다. 테스트 결과 아이의 레벨은 어드밴스드 레벨. 말이 어드밴스드지, 학원에 딱 2개 있는 레벨의 윗레벨이었다. 그런데도 내 어깨가 붕- 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는 자유롭게 뛰어노는 게 최고라고, 사회성이 부족하니까 또래와 원만한 관계를 만드는 데만 신경 쓰자고 다짐했던 나였지만, 레벨 테스트를 보고 난 뒤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실감했다. 이와 비슷한 일은 영어학원에서도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시작한 엄마표 영어 만으로 아이는 대형 영어학원의 레벨테스트를 나름 좋은 성적으로 통과했다. 최상위 반은 아니었지만 평균보다 높은, 아마 준상위권 반이었을 것이다. 상담하던 선생님은 엄마표 영어만으로 이 정도 성과를 내긴 어렵다고 말했다. 내 두 어깨가 다시 비죽 솟아올랐다. 상대적으로 아이에 대한 평가가 후하지 않은 학원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원어민 2학년 수준으로 영어를 한다는데, 상담 선생님은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 말했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금방 오를 거라고. 나는 학원의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를 두고 입을 비죽거렸다.
학습에 관해서 만큼 나는 꿀릴 게 없는 엄마였다. 아이의 기억력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좋으니까. 관심만 있다면 반복 또 반복하는 게 자폐 스펙트럼의 특장점이니까. 아이는 숫자를 좋아했고 영어 책이나 CD, DVD를 외울 때까지 읽고 듣고 봤다. 같은 것을 여러 번 하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물론 학원에 보내지는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고 레벨 테스트를 본 게 전부였다. 실은 학원에 보낼 수 없었다. 예체능이 아닌 학습이 주목적인 학원은 더더욱. 아이가 산만하여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까 걱정스러웠고, 혹시나 자기보다 높은 반에 속한 친구를 보며 좌절할까 두려웠다. 가뜩이나 일등이 아니면 루저라고 생각하는 아이를 경쟁이 득실득실한 곳에 넣고 싶지 않았다.
사회성에서 손해 보는 거, 학습 능력으로 만회하리란 욕망을 품은 적도 있었다. 과학 관련 WHY 책만 보니까 과학고라도 보낼까? 그럼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나? 지금 뭐부터 준비해야 하지? 그러나 나는 안다. 학습을 목표로 하는 순간, 내 아이가 엄청난 스트레스에 나가떨어질 거란 사실을. 방문 학습지에서 수학 한 문제 틀렸다고 질질 눈물을 짜는 아이를, 옆에서 가르쳐 주려고 해도 듣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를, 그러면서 틀린 문제는 고치기 싫다며 문제집을 내팽기치는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는 없다.
아이는 학원에 갈 만큼 여물지 못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