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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May 05. 2024

이름만 예뻤던 진상 환자

세계의 이름 이야기 6

처음 파리에 갔을 때, 2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버진(Virgin)이라는 레코드 가게가 있었다. 혹시 90년대 강남역의 타워 레코드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크고 많은 종류의 상품이 있었다고 한다면 될 것 같다. 한국에서 구하지 못하는 앨범이 수없이 많아 내게는 하루종일 놀아도 좋을 테마파크 같은 곳이었다. 거기에 한 흑인 청년이 자꾸 뭔가를 설명하는데, 나는 불어를 거의 못 할 때여서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추천하는 것 같았다. 그의 불어는 평소에 그려지는 미국 흑인의 언어와 너무 달라서 잘못 더빙된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몬트리올의 흑인은 2021년에 인구의 11%인 20만 명 정도로 집계된다. 아이티 커뮤니티가 가장 큰 12만 명으로, 자메이카나 미국 둥, 영어권에서 온 흑인들보다 많다. 1969년에서 1974년 사이, 아이티의 독재자 프랑수아 뒤발리에와 그의 아들 장 클로드 뒤발리에의 폭정을 피해 망명한 사람들도 있고, 2010년 아이티 대지진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도 있다. 캐나다 안에서는 불어를 사용하는 퀘벡주, 그중에서도 대도시인 몬트리올의 북부에 몰려 있다. 미국에 비해 몬트리올은 흑인의 비율도 적고 프랑스어 사용자가 많아서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는 흑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내가 상대해야 했던 환자들은 그랬다. 딱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몬트리올에 사는 흑인으로서는 드물게 그녀는 영어사용자였다. 아마 불어도 할 줄 알았겠지만 남편이 영어사용자고 영어지역에서 살아서인지 영어를 쓰던 그녀는 한마디로 진상이었다. 그녀의 남편도 대단했고 아이들은 버릇이 없었다. 고등학생인 둘째 아들이 오후 다섯 시에 예약이 있던 날이었다. 네 시 손님이 두 시간 전에 예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혹시 5시 대신 4시에 와줄 수 있는지를 전화해서 물었다. 그러면 치위생사, 어시스턴트, 치과의사, 이렇게 세 명이 일찍 퇴근할 수 있었으니까. 아이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4시는 고사하고 5시 예약에도 15분을 늦게 왔는데 미안한 기색조차 없다. 치위생사가 "늦었네(You're late)" 한 마디를 하고 데리고 들어갔다. 다음날 아이 엄마는 데스크로 전화를 해서 불같이 화를 냈다.


"애가 좀 늦을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래? 안 그래? 뭘 그걸 갖고 애들 괴롭히고 난리야!"


그렇게 잘못한 것도 없이 한참을 시달리면서 나는 우습게도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잘 다듬은 긴 손톱에 손가락마다 반지를 낀 손을 허리춤에 얹고 머리를 까딱까딱하며 따지는 흑인 아줌마가 그려졌다. 전형적인 흑인의 영어 악센트였다. 그런데 이름만은 굉장히 프랑스적이었다. 아니, 이름이 프랑스였다. 마리-프랑스. 이런 환자는 좀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 후로 나타나지 않았다. 올 수가 없었다. 죽었으니까...


그녀의 남편이 예약 당일에 취소 전화를 했다. 아침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단다. 불과 몇 달 전에 통화했던, 아직은 젊은 40대의 건강해 보이던 여성이 세상에서 없어졌다는 건 참 애매한 상실감을 불러왔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그런 것일까. 내게는 진상이었지만 네 아이의 엄마였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의 가족은 하나둘씩 검진을 받으러 오기 시작했다. 진료 시간에 늦었던 환자도 이제 우리에겐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가여운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막내딸을 데리고 나타났다. 2년 이상 치과 검진을 안 한 데다 지난번에 발견된 충치도 치료하지 않은 채 그대로여서 상태는 심각했다. 대부분 영구치니까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전화하겠다며 아이를 데려가버렸고 그 뒤로 그 아이는 볼 수 없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4남매 중에 이 아이만 성이 달랐다. 첫 애가 아니고 막내가 왜 아빠 성이 아닌지는 개인 사정이니까 알 도리는 없다. 입양한 아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하여간 문제는 그 아이만 아빠 직장에서 나오는 치과 보험의 혜택을 못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사연인지는 몰라도 가족으로 받아들였으면 이렇게 방치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아동학대라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만 예뻤던 진상 손님 마리 프랑스는 이 아이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내게는 진상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엄마, 그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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