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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May 04. 2024

역사박물관에 서서

캐나다 수도 이야기 4

'경비원의 출신 국가를 추측할 때 가이아나, 알바니아, 러시아 중 하나를 찍으면 적중할 확률이 높다. 다른 카리브해 연안국들과 구소련 국가들이 그 뒤를 따른다.'


요즘 베스트셀러인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행하면서 박물관에서 일하는 경비원들이 어느 인종인지를 관찰하곤 한다. 물론 알바니아와 러시아 사람을 구분할 재주는 없고 약간 서늘한 느낌의 백인은 대략 동유럽 사람이겠구나 짐작만 할 뿐이다. 보통 백인과 흑인이 많고 히스패닉은 적은 편인데 아시안은...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동양인이 선호하는 직업이 아니어서일지도 모르겠는데, 상상을 해보면, 왠지 말을 잘 들어야 할 것 같은 이미지가 아니어서일까? 내가 만약 고흐의 그림 앞에 서 있는 덩치 큰 흑인 청년에게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경고하면 그가 말을 들을까? 상상일 뿐이다. 하여간 아시아인이 지키는 박물관 전시장은 잘 없다.


오타와의 인종별 인구비율은 뉴욕에 비해 백인이 많고 흑인은 훨씬 적다. 그래서인지 (구인 공고에도 명시된) 인종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캐나다의 공기업, 크라운 코퍼레이션이 운영하는 역사박물관인데도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백인이었다. 인포메이션 데스크의 아저씨는 박물관 안내책자를 탐구하다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역사박물관은 연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캐나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길치인 데다 몸도 아팠던 나는 이 날, 박물관의 1층과 2층 사이 길을 잃어 2차 세계대전으로 갔다가 빙하기를 거쳐 2002년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총리였던 장 크레티엥을 발견했다.

1993년부터 십 년간 캐나다의 총리를 지낸 그는 퀘벡주 셔위니건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가난한 집안의 19남매 중 18째로 태어났는데 어려서 안면마비를 앓았다. 여기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선거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반대진영에서 '(이렇게 생긴) 사람이 총리라고? (Is this prime minister?)'라며 공격했을 때의 일이다. 크레티엥은 이렇게 맞받아쳤다. "맞아, 난 입을 한쪽밖에 쓰지 못해.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은 아니야. (don't talk out of both of sides of mouth)" 즉, 거짓말은 안 한다는 표현을 입이 비뚤어져서 한쪽을 제대로 못 쓰는 자신을 두고 한 농담이 오히려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승리했다.

프랑스의 탐험가 사뮤엘 드 샹플랭이 퀘벡시티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 4백 년 전이니 캐나다의 역사라는 것은 유구한 유럽이나 아시아의 역사에 비하면 미천하다. 더구나 유럽에서 온 정착민들은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힘든 생존을 이어갔으니 박물관이라고 화려한 문화유산을 뽐낼 리가 만무하다. 오히려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의 의지라면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중요한 전시장은 캐나다 원주민들의 주거 공간과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토템 폴
캐나다에서는 이제 원주민들에게 '인디언'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토착민이라는 뜻의 'Indegenous people/Autochtone'이나 그들을 통칭하는 'First nations'라고 해야 한다.
 

지난 2019년, 바로 이곳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지난 100년간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 아이들을 교육시키겠다며 부모로부터 격리시켜 기숙학교를 운영했었는데, 거기서 죽어간 2,800명 아이들의 이름을 적은 50미터 길이의 붉은 배너를 걸어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부른 것이다. 1863년에서 1998년까지, 캐나다 문화에 동화시키려고 그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금지시킨, 현대 캐나다 역사의 끔찍한 단면이었다. 모두 15만 명 정도의 원주민 아이들을 데려갔고, 희생자는 1,600명 정도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캐나다 정부는 2008년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인 사과문을 내놓았고 7개 원주민 언어로 번역되었다.

사진: National center for Truth and Reconcilliation

캐나다 역사박물관(Canadian Museum of History)은 실은 오타와 강 건너편 가티노(Gatineau)에 있다. 팔러먼트 힐 바로 건너편이라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지만 관람객의 인종분포도는 달라진다. 의사당 투어에서는 제법 눈에 띄던 아시아인의 수가 확 줄었다. C$22라는 입장료 때문이 아니라 오타와 시내가 아니라서라고... 믿고 싶다. 


Q. 캐나다에 처음 발을 내디딘 사람은?

    프랑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

    대구잡이를 하러 온 북유럽 선원?


캐나다 역사는 이제, 빙하기에 동북아시아에서 베링해협을 건너온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첫 주민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니까 캐나다의 원주민과 우리는 조상이 같다고 봐도 무방할까? 마치 이곳에 먼저 뿌리내린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해주고 싶다. 


"캐나다엔 우리 먼 조상 할아버지 할머니가 먼저 오셨어. 만 년도 더 전에. 그걸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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