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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Sep 13. 2020

1박 2일 장거리 여행은 가는 거 아냐

전남 해남, 보성 편

  첫 입사를 하고 그 해 8월 중순.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어 대성리를 함께 했던 친구 신군과 1박 2일로 여행을 가기로 정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한반도 최남단의 땅끝은 한 번 밟아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정해진 여행의 목적지는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 별생각 없이 목적지를 잡고 난 후, 나는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2시까지 야근을 했다. 다음 날 휴가니까 늦게까지 일해도 되지 않느냐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을 그러려니 하던 시절이었다. 


  금요일 아침 8시에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신군과 만나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해남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거리도 멀고 버스도 하루에 몇 대 없었다. 그래서 대신 목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목포로 갈 필요가 있었나 싶긴 하다. 차라리 광주로 가는 게 빨랐을지도 모르겠다.) 목포에 도착하니 4시간 정도 걸렸다. 우리는 해남 땅끌 마을로 바로 가는 직행버스의 시간표를 확인하고 여유가 있어 터미널 지하 식당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해남 시내까지 한 시간, 다시 땅끌 마을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가는 데만 버스로 여섯 시간이 걸린 것이다.  


  땅끝마을에 도착하니 엄청나게 많은 숙박 시설과 함께 바다 냄새가 물씬 풍겼다. 땅끝마을 전망대가 있었는데 오르는 길이 무지막지하게 오르막길이었다. 젊은 혈기에 걸어서 올라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모노레일을 타기로 했다. 편도를 끊어서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서 내려오기로 합의를 보고 전망대에 도착했다. 매일 충무로의 빽빽한 건물들 사이에서 숨만 쉬며 일하다가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있자니 무언가 벅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 맛에 여행을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군과 나는 열심히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봉수대(봉화대)도 구경을 한 후 땅끝비가 있는 쪽으로 걸어서 내려갔다. 전망대는 땅끝마을에서 바다나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면 땅끝비는 정말 이 곳이 한반도의 최남단임을 알리는 표지판 같은 것이다. 이 곳까지 발도장을 찍고 우리는 처음 버스를 탄 곳으로 돌아와 다시 버스를 타고 해남 시내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해남 시내를 조금 돌아다녔다. 시내라고는 하지만 번잡스럽지 않고 늘 가던 시골의 느낌이 물씬 나서 좋았다. 출발 전에 미리 해남 살던 지인에게 들은 대로 당시 해남에 유일하다고 했던 터미널 앞 찜질방으로 향했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친구들과 자주 찜질방에서 밤새 수다를 떨다가 자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싸고 씻기 좋고 뒹굴기도 좋은 찜질방을 선택했다. 이곳 찜질방은 서울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저녁이었는데 동네 아저씨들이 찜질방에서 야구를 보시면서 치킨을 시켜 먹고 계신 게 아닌가! 보통 찜질방에서 외부 음식을 못 먹는 걸로 아는데 뭔가 자연스러웠다. 그런 광경은 이후로 두 번 다시 본 적은 없었다.


  기나긴 버스 이동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며 잠을 청하고 다음 날. 우리는 다시 한번 찜질방의 탕에서 몸을 가뿐하게 녹인 후 아침을 먹고 터미널로 향했다. 순천으로 가는 버스는 도중에 보성, 벌교 등에 정차한다고 쓰여 있었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보성에서 내렸다. 그래도 땅끝만 보고 가기는 아쉬우니 보성 차밭이나 한 번 구경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차밭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정류소에서 딱 내리니, 비가 한 방울 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산이 없었던 우리는 가랑비라는 이유로 그냥 비를 맞으며 차밭으로 향했다.


  각종 CF, 드라마, 영화 등에서나 보던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니,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초록색 색감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리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차밭을 따라 전망대로 올라갔다. 생각보다 오르는 길이 힘들었지만 올라가니 저 멀리 남해 바다가 보였다. 해남에서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가까운 바다와 먼바다의 차이랄까. 하지만 비가 와서 오래 있지는 못하고 다시 내려와야 했다.


  보성 터미널로 돌아와 신군과 나는 다시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순천역 근처의 한 식당에서 육회비빔밥을 한 그릇씩 해치운 우리는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으로 돌아왔다. 저녁까지 먹고 우리는 그렇게 짧은 1박 2일 여행을 마쳤다. 


  이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은, 장거리 여행을 1박 2일로 가는 건 너무 힘들다는 점이었다. 무언가를 구경하는 시간보다 이동 시간이 더 길다는 아이러니. 그래서 이 이후로는 장거리 여행은 조금 긴 일정으로 잡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 준, 그런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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