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 익산 편
친구 신군과 해남 땅끝마을 여행을 가기 1년쯤 전. 3년 간의 임용고시 준비를 마치고 고시 생활을 접기로 마음을 먹었던 시기였다. 당장은 이력서를 쓰고 어느 길을 택할지 고민하던 순수한 20대 후반의 나는 할아버지의 제사를 핑계 삼아 훌쩍 시골 큰아버지 댁으로 떠났다. 제사를 지내고, 다음 날 사촌 형이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었고, 나는 그렇게 생애 첫 나 홀로 여행을 시작했다.
큰아버지 댁이 있던 정읍에서 기차를 타고 익산역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장항선을 갈아타고 군산역으로 향했다. 원래 군산역은 익산과 군산 사이만 왕복하는, 군산선만 존재했었다. 그러다가 서울 - 장항을 오가는 장항선 철로가 군산을 거쳐 익산으로 가게 되면서 군산역을 새로 지었다. 당시에는 군산역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군산역에 내렸는데 허허벌판이었다. 아무것도 없더라.
가을 무렵의 군산은 철새 축제가 한창이었다. 철새 수천, 수만 마리가 모여드는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철새 조망대에 가서 철새 축제를 보고, 철새 조망대에서 셔틀버스로 금강 건너편의 금강하굿둑 관광지로 가서 철새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에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나와 한 여성 분만 탔다. 그 여성 분은 모 언론사의 기자로 철새에 대한 기사를 쓰러 왔다고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금강 하구의 강 사이로 드러난 바닥에 떼 지어 모여 있던 수많은 철새들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철새 조망대로 돌아와, 기자 분과 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헤어졌다. 기자 분은 저녁에 철새들의 군무를 촬영한다는 이유로 남았고, 나는 버스를 타고 군산 시내로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들른 곳은 진포 해양 테마공원. 퇴역한 함선을 비롯하여 군 관련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거기와 금강을 따라 해산물 등을 구경하다가 터미널로 돌아가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거리의 익산으로 돌아갔다.
익산 터미널에 도착해 한참을 기다리고 있자니, 성대위가 퇴근 후 나를 데리러 왔다. 성대위는 나와 함께 같은 자대에서 근무했던 동기로, 당시 익산 근처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회포도 풀고, 저녁도 함께 먹은 후 제수씨가 친정을 가고 없는 성대위 집으로 가서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하던 성대위는 나를 미륵사지에 내려주고 갔다. 그리고 나는 미륵사지 석탑이 있는 미륵사지를 구경하러 갔다. 큰 기대를 하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별로 볼 게 없긴 했다. 당시에는 석탑 자체도 공사를 하고 있어서 제대로 볼 수 없었고,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고, 전시관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다소 큰, 전시관 구경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몇 년 후였을까.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군산을 촬영지로 하면서 철새들의 군무를 화면으로 접할 수 있었다. 꽤나 장관이었다. 당시의 나는 차가 끊기면 오갈 곳 없는 처지였지만 지금은 차도 있고 같이 다닐 사람도 있다. 그래서 감히 소망한다. 언젠가, 군산에서 제대로 된 철새들의 군무를 직접 보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