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편(2)
익산에서 버스를 타고 광주에 도착했다. 군복무를 전남 장성에서 했기에 광주에 같이 군생활을 했던 친구들이 몇 명 있어 같이 점심을 먹고 오후에 광주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 사상터미널로 향했다. 오후 4시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도착하자마자 고등부 때 담당 목사님이 계시는 교회를 찾아갔다. 다행히 토요일이었음에도 9시 가까운 시각까지 목사님께서 교회에 계셨고, 나는 교회에서 아늑한 잠자리를 제공받음과 동시에 월요일 아침까지 교회에서 지낼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아침을 먹고 교회를 나서서 해운대로 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부산에 와서 태종대는 가보았지만 부산 최고의 해변이라 할 수 있는 해운대는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해운대> 때문에 가보고 싶었던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부산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거의 한 시간쯤 가고 나니 해운대역에 도착했다.
해운대역에서 해운대 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은 큰 대로변이다.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 길은 아니지만 길이 넓다. 그리고 도로의 양 옆으로는 무수히 많은 맛집이 존재하며, 그 뒤로는 각종 숙박 시설들과 유흥가가 공존하고 있다. 이때는 물론 초행길이었고, 낮이라 잘 몰랐지만 말이다. 부푼 마음을 안고 해운대 앞에 도착했는데, 그냥 바다다. 태종대와 다를 게 없어 보였고, 군산 바다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푼 가슴이 다시 쪼그라들었다.
해운대를 따라 걷다 보니 동백섬이 있었다. 호텔과 함께 Apec 하우스가 있다. 안을 구경하고 나서 보니 저 멀리 완공된 광안대교가 보였다. 지하철로 4정거장 거리에 있는 광안리. 하지만 가로질러 가면 더 빠르지 않을까 라는 헛된 생각과 함께 동백섬에서 광안리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11월이라지만 점퍼도 입었던 데다가 햇살이 좋은 낮이라 더웠다. 가는 길에 배가 고파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었는데, 기분 탓인지 조금 짜다. 샌드위치와 음료수로 체력 보충을 하고 지난 번엔 밤에 왔던 광안리를 낮에 와서 보게 되었다. 해운대와 비슷했다. 밤의 해변가가 주는 운치는 없었다.
다소 시무룩해져서 지하철을 타고 지금의 경성대부경대역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이기대 공원, 오륙도를 갈 생각이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순간 어디선가 사이렌이 울렸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사이렌 소리. 그랬다. 나는 여행 도중에 버스를 기다리다 민방위 훈련을 만난 것이다. 당연히 버스는 오지 않았고 어디 들어가 있을 주변머리도 없었던 당시의 나는 멀뚱히 버스정류장 근처에 서서 훈련 상황을 모두 지켜보았다. 통제하는 사람들, 준수하는 시민들. 그리고 몇몇 몰래 도망가는 시민들과 운전자들까지. 어딜 가나 질서를 지키지 않고 편한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꼭 있다. 다행인 것은, 나는 비교적 질서를 잘 지키는 쪽이라는 것.
15분 동안의 훈련이 끝나고 나서야 버스를 타고 이기대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이 커봐야 얼마나 크겠나라는 생각과 함께 오륙도까지 구경할 생각이었지만 오산이었다. 나는 이기대 공원 끝에서 끝까지 2시간 가량을 걸어야 했고, 오륙도 선착장에 도착했을 땐, 섬을 보러 들어가기는 애매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걸을 힘이 없는 것도 원인일 수 있었다. 그래서 아쉽게도 오륙도 선착장 앞에서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저녁이 되어 친구 성군의 집으로 향했다. 군 입대 직후 4개월 가량의 초군반 교육 시절 룸메이트였던 성군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근처 고기집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밥을 먹고 성군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어느 누가 여행을 다니다가 민방위 훈련을 만날 거라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날은 내게 그래서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던 것 같다. 그리고보니 관광을 오는 외국인들이 민방위 훈련을 만나게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실제 상황인 줄 알고 당황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