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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Sep 28. 2020

노랗고 붉어서 불국사?

경남 경주 편(2)

  부산의 친구 성군의 집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친구의 출근길에 같이 나와 지하철을 타고 부산 노포동 터미널로 이동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까운 사상 터미널로 갔어도 될 뻔했겠지만 당시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노포동으로 갔다. 그리고 어디로 가볼까 고민했다. 혼자 다니는 여행에 뚜렷한 목적지가 있을 리 없었으니. 그러다 문득 시선이 가 닿은 곳은 이미 가보았던 곳. 멀지 않은 곳. 경주였다. 


  버스를 타고 경주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가는 동안 수학여행을 떠올렸던 것 같다. 이미 나는 대학을 졸업했기에 문무왕 수중릉을 찾아야 할 필요도 없었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동창들도 대부분 연락이 되지 않은 때였지만 오랜만에 옛 기억을 꺼내어보다 보니 어느덧 경주에 도착했다. 관광지도를 하나 받아 들었다. 방향을 가늠하고 그냥 걸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천마총. 그리고 첨성대였다. 수학여행 당시에 왔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보여주는 것과 내 돈을 내고 내 의지로 관람하는 것은 달랐다. 스치듯 보고 지나가는 것도 있지만 차분히 시간을 들여 보게 되는 것들도 있었다. 재촉하는 이도, 성가시게 하는 이도 없으니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의 특권 이리라. 


  첨성대에서 월성을 거쳐 국립경주박물관까지 가는 길은 제법 힘들었지만 걸어갈 만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방영되고 오래 지나지 않아서인지 경주 곳곳에 선덕여왕의 등장인물들의 입간판들과 촬영지 광고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덕분에 월성을 지나며 머릿속으로 선덕여왕 드라마 스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되뇌었던 것 같다. 박물관에 도착하니, 가을이라 소풍 다니는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단풍 구경 나오신 어르신들과 가을 소풍을 나온 꼬맹이들이 매우 많았다. 조용한 사색의 시간은 끝났고, 나는 에밀레종을 비롯한 유물들을 빠른 속도로 관람했다. 


  다시, 불국사 앞에 섰다. 다보탑과 석가탑. 푸르른 봄 풍경을 기억하던 나에게 가을의 노랗고 붉은 불국사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름다웠다. 불국사 들어가면서 절하고 탑 두 개 보는데 4000원이나 입장료가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미워질 정도로 좋았다. 다만 힘들어서 석굴암까지 걸어갈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았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을 걸어서 간다는 건, 그야말로 하루 일정의 등산이 아닐까 싶어서 아쉬운 대로 불국사의 경치만 눈에 담아두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경주 엑스포 공원까지 구경을 하고 다시 저녁쯤 되어 터미널로 돌아왔다. 경주에서 잘 수 있을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향했다. 그래도 대도시이니 찜질방 하나쯤은 있겠지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하루 일정의 두 번째 경주 여행을 마쳤다. 


  고등학생 시절에 본 경주와 서른 즈음에 다시 찾은 경주는 확실히 달랐다. 가는 길이 달랐고, 지갑의 두께가 달랐으며, 보이는 것도 달랐다. 같은 곳을 가더라도 나이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다른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던 여행이 경주 여행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때 결심했다. 혼자일 때 많은 곳을 다녀보기로. 그리고 언젠가 내 짝꿍과 함께 다녀보겠노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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