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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Sep 06. 2020

생애 첫 민박

강원 가평 편(1)

  대학교 4학년, 마지막 여름 방학을 맞이하던 시기였다. 나는 군대를 가지 않고 휴학도 하지 않은 채 맞이하는 4학년 2학기였기 때문에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던 친구들은 하나 둘 전역하던 시기였다. 부산행에 함께 했다가 해병대에 지원한 친구 S군은 전역을 한 달 남겨둔 상황이었고, 그 무리들인 예비역 신군, 임군. 그리고 조군과 함께 나의 마지막 여름을 기리기 위해 우리는 가까운 곳으로 물놀이를 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결정된 곳은 강원도 가평 대성리. 지금이야 사전에 다들 펜션들을 예약하고 차를 끌고 다니겠지만 당시만 해도 버스를 타고 또 갈아타고 어느 정류장에서 내렸던 것 같다. 내가 주도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냥 가자는 대로 따라만 갔다. 내려서 마을로 조금 들어가 민박집을 하나 잡았다. 그러고 보니 민박을 한 것도 난생처음이었다. 


  짐을 풀고 우리는 계곡으로 물놀이를 하러 갔다. 태생적으로 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계곡에서 노는 것은 좋았다. 다만 너무 깊은 곳은 들어가지 않고 얕은 곳에서만 신군, 조군과 함께 놀고 임군은 물에 들어가지 않은 채 주로 우리 사진을 찍어주는 역할을 했다. 덩치가 제법 큰 조군과 날렵한 신군. 우리 셋은 거의 몇 시간을 물에서 놀았던 것 같다. 


  민박집에 돌아와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기 파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당시만 해도 나는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할 줄 몰랐고, 나머지 둘도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조군이 S군과 함께 요리를 제법 잘하는 축에 속했기에 요리는 모두 그가 담당했다. 덩치가 곰만 한 조군은 마침 다이어트 중이었고, 제법 날렵한 턱선이 살아나던 시점이었다. (물론 이때 이후로 다시 그의 턱선을 보는 일 따윈 없었다.)


  고기를 굽는 시간이 되었다. 조군은 열심히 고기를 구웠지만 다이어트를 이유로 고기 한 점 먹지 않았다. 고기 굽고 요리하는 구경만 한 우리 셋만 아기새처럼 열심히 받아먹기만 했을 뿐. 그때 그는 얼마나 고기를 먹고 싶었을까. 당시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일단 배가 고팠으니까. 고기에 소주를 마시며 우리는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하나 둘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어딜 가든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있다. 혼자 일어나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고 나서 민박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또다시 조군이 차린 아침을 열심히 먹었다. 대신 미안해서 설거지는 나와 신군이 했다. 그리고도 오전 내내 수다를 떨다가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요즘 여행은 대부분 캠핑장에서 캠핑을 하거나 호텔, 펜션을 사전에 예약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목적 없이 떠나는 민박이 생각날 때가 있다. 지금도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민박집들이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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