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태석 Aug 23. 2020

저녁 먹으러 어디까지 가봤니?

강원 춘천편

  즐거운 수학여행, 험난한 수련회. 다사다난했던 고3 수험생 시절까지 모두 마치고 나니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내가 원하던 전공은 아니었지만 2순위(?) 정도로 원했던 전공이기에 만족하면서 경기도 용인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용인까지 얼마나 멀겠냐마는 당시에 집에서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당산역에 가서 2호선을 타고 강남역에 가 다시 버스를 타고 가는, 2시간이 넘는 험난한 여정이었기에, 나는 1학년 1학기부터 기숙사 생활을 선택했다. 그리고 개강과 함께 동아리에 가입했다. 기독교 동아리였다. 


  대학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도 하고, 동아리 동기들과도 친해지던 4월 중순경. 어느 목요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수업을 마치고 동아리방에 갔다가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전도사님(당시에 대학생들만 있었기에 동아리를 담당하시던 전도사님은 우리에게 소위 선생님이고, 으른이었다.)의 차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일종의 1학년 단합대회랄까. 나까지 7명의 학생들이 전도사님의 9인승 검정 카니발에 올라타 어디론가 저녁을 먹으러 훌쩍 떠났다.


  수업을 마치고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출발해 전도사님이 가자고 제안했던 곳은 용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곤지암 부근의 한 식당이었다. 하지만 밤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목표로 했던 도로에 진입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곤지암에서 멀어졌고, 당시만 해도 강원도 쪽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동기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잡혀갈라.) 길을 따라 가다 양평도 지나고 청평도 지나면서 이럴 바에는 아예 가서 닭갈비를 먹고 오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막히고 막힌 길을 뚫고 춘천 명동 닭갈비거리까지 가게 되었다. 차에서 내리니 밤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우리는 두 테이블로 나누어 닭갈비를 미친 듯이 먹었다. 너무너무 맛이 있었다. 서울에서 닭갈비를 안 먹어 본 것은 아니지만 춘천에서 먹은 닭갈비는 정말 맛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옛 어르신들의 말은 틀림이 없었던 것일까. 혈기 왕성한 나이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밤 8시가 되었으니 뭘 줘도 맛있게 먹었을텐데 하물며 닭갈비라니!


  후식까지 말끔하게 해치우고 9시가 조금 넘어 우리는 다시 용인으로 향했다. 먹고 나니 다들 피곤했는지 돌아가는 길에는 졸거나 조용히 바깥 구경을 했던 것 같다. (바깥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말이다.) 하지만 결국 12시가 넘어 학교에 도착해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본의 아니게 1박 2일 MT가 되어버린 닭갈비 원정대는 결국 동아리방에서 조금 더 수다를 떨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그 친구들은 지금 각기 자기 영역에서 잘 살고 있다. 그래도 자주 연락하던 친구도 있고, 뜸하게 연락하는 친구도 있고,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모두들 살면서 한 번쯤은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않을까? 그때의 닭갈비 맛을 아직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이전 03화 친구들과의 첫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